투병일기 4

삼 년 고개

내가 좋아하는 12월이 시작되었다 1년은 열두 개의 달로 나뉘어 있지만 같은 달이라도 맞고 보내는 감정이 같지는 않다 기다려지는 달이 있고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달도 있다 내가 기다리는 12월은 생일이 들어있고 인류의 명절 크리스마스도 있다 달력을 바꾸기 전에 보고 싶은 사람이 생각나고, 살아온 여정을 조용히 되돌아보는 시기이기도 하다 괜스레 설레는 12월이다 올 12월은 더욱 각별하다 폐암 수술을 받으면서 코로나 19 확진 의사와 접촉되어 자가 격리자가 되었다가 12월 1일 해제되었다 되돌아보면 아주 위험한 고비를 한 번에 두 개나 넘은 셈이다 폐암 자체로도 어려운 수술이었는데, 코로나 19의 폐렴을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은 천운이다 코로나 19 창궐기의 폐암 치료 과정은 처음부터 어려웠다 병원 자체가 ..

투병일기 2020.12.01

황당한 병원 생활

11월 17일은 내가 폐암을 수술하는 날이다 마누라는 며칠 전부터 여행 가는 사람처럼 여행가방을 꾸렸다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며 들고 다니던 캐리어도 낡아서 새로 샀다 코비드 19가 종식된다 한들 이제는 해외여행 가기는 글렀다 그러면서도 해외여행 갈 때나 쓸법한 고급 캐리어를 산 것은 이제부터 우리의 여행지는 병원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여행을 떠나는 마음으로 편하고 산뜻하고 좋은 물건만 좋은 가방에 담아서 병원에 가자는 뜻이 숨어있다 입원 예약시간은 오후 3시다 시내버스를 타고, SRT를 타고, 셔틀버스를 타고, 점심을 먹고 느긋하게 출발했어도 시간 여유 있게 병원에 도착했다 서울 상급병원은 입원하는 날 아침에 전화 문자로 예약된 병실을 알려줘서 바로 병실로 가면 된다 코로나 때문에 문병이 금지되고 보호자도..

투병일기 2020.11.23

미래는 모른 채로

모든 사람과, 세상의 이치를 통달해서 과거는 물론 미래까지 정확하게 알아맞히는 점쟁이는 몹시 불행할 것 같다 자신의 일이야 말할 것도 없고, 남의 일이라도 미래를 미리 알아버리면 사실대로 말하기도 어렵고 말해주지 않아서 닥쳐올 불행을 막지 못한 책임에 괴로운 삶을 살게 될 것 같다 점쟁이는 미래를 알기는 하지만 바꾸어 주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건강검진에서 비롯된 나의 암투병은 수술 일정이 잡히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암이라는 무서운 병이 왜 나에게 생겼을까, 얼마나 살 수 있을까, 치료비는 얼마나 들까..... 처음에는 질병과 관련된 궁금증과 그것을 규명하는 단계였다 왼쪽 폐에 4개, 오른쪽 폐에 2개의 결절이 암으로 의심된다고 크기까지 적시했고, 과거의 사진과 비교해보면 왼쪽에서 오른쪽 폐로 전이된..

투병일기 2020.11.23

黎明의 시간에

새벽 6시. 집을 나선다. 여느 때 같으면 잠자리에 뭉개고 누워있거나 TV로 뉴스를 보고 있을 시간이다. 9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하는 봉급쟁이의 생활습관은 대부분 그렇다. 은퇴 후에도 생활습관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미명의 시간에 이렇게 집을 나서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아주 특별한 일이다 길을 나서니 소싯적에 읽었던 스님의 글귀가 또 나를 붙잡는다. 어디를 이렇게 급히 가시느냐고 스님이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었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스님에게 대답했다. 밭에 일하러 갑니다. 조카 결혼식에 갑니다. 손자 보러 아들 집에 갑니다. 공부하러 학교에 갑니다...... 모두 그렇고 그런 연유로 바쁘게 길을 가야 하는 사정이다. 스님은 하늘을 바라보며 헛헛하게 웃었다. 바보들, 결국은 죽으러 가는 길인데..

투병일기 2020.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