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심 봤다

재정이 할아버지 2016. 12. 21. 13:09

 [심 봤다]

지난 6월 중순경이었다.

담 하나 사이로 이웃에 사는 김씨가 밤늦게 나를 찾아 왔다.  평소 부터 낯은 익지만 특별히 아는 사이랄 것도  없는 김씨다.   김씨는  보따리 하나를 들고 엉거주춤 서 있었다.

“ 전매국에 다닌다기에 찾아 왔심니다......”

듣던 대로, 사람 좋기는 그만이지만  동네 허드렛일 품팔이로 근근히 살아가는 김씨는 전매청을 옛적 이름인 전매국으로 착각하고 있을 만큼 무지렁이 였다.  외출에서 금방 돌아온듯 헐렁하게 걸친 낡은 밤색 양복 위로 허수아비처럼 깡마른 그의 몸은 목이 유난히 길어 보였다.   때에 쩔어든 머리는 수세미 같았으며  흘러내리는 땀은 누룩뜨는 냄새도 났다.  용건을  물으니 환갑이 불원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서른 일곱 밖에 되지 않은 나에게  허리를 조아리며  걱정거리가 있어 꼬박 사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고심하다  전매국에 계신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왔노라고 주눅든 침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 전매국에서 담배하고 인삼 공출을 받는다지요 ? ”

“ 공출이 아니라 수매라 합니다. ”

“ 인삼 검사원이라지요 ? ”

“ 인삼은  잘 모릅니다.  인삼 감정원은  다른 사무실에 있지요 ”

김씨는 금방 허물어져 내릴 듯 실망하는 표정이었다.  이제껏 소중히 품어 안았던 나일론 보자기 보따리가  갈퀴발 같은 손가락 마디에 걸려 맥 없이 무릎께로 매달렸다.

그  모습이 너무 애처롭고  딱해서 인삼에 대하여  깊이는  모르지만  김씨가 왜  그토록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는지 도와줄 수 있다면  돕고  싶은 동정심과 직업적인 호기심이 일었다.

허청허청 쓰러질듯 고샅길을 돌아가는 김씨를  달음질로  따라가 맥칼없이 늘어진 팔소매를 잡아  당기자  김씨는  화들짝 놀라 보따리를  가슴  깊이 끌어 안으며 아까와는 반대로 경계의 눈빛이 되어  긴장했다.   내가  비록  인삼 감정원은 아닐지라도 같은 직장내의  일이니 어느 정도는 알고  있노라고  말하자  김씨의 얼굴은  다소  안도하는 눈치였으나 그래도  쫒기는  사람처럼 불안해  하며 나를  잡아 끌어 그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단촐하지만  늙은  두 내외가 사는 집이라 작은 방도 커보였다.

구식 장롱 하나가  윗목을  메우고  그  옆에는  화면이 일그러진 흑백 텔레비젼에서 술취한 여자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도색이 군데 군데 벗겨진 전기 밥솔하나,  설거지를 기다리는 밥그릇이 놓인 개다리 밥상 하나,  그것이 가재의 모두였다.  선참 설친 얼굴인 그의 아내는 느닷없는 나의 방문에도 무표정이었다.  문만 열어 주고는 옆에 비켜서서  나와  김씨를  번갈아  바라만 볼 뿐이었다. 김씨가 권하는 대로 아랫목에  자리를 잡자 김씨도 그의 아내도 내 앞에 쓰러지듯 주저 앉았다. 그리고  보따리를 내 앞에 조심스럽게 내려 놓았다.

“ 이실직고 말씀 올립죠,  이게 무슨 물건인지 좀  봐 주시구랴 ”

김씨가 주섬 주섬 보따리 매듭을 풀자 종이 상자가 나왔고,  종이 상자 안에서는  비닐 봉지에 담긴 젖은 수건이 있었다.  두손으로 정중히 건네는 수건을 받아 들고 수건을  펴니  거기에는  싱싱한 이파리와  미끈한 청갈색 줄기에  매달린 새끼 손가락 크기의 인삼이 뉘어 있었다.   잔주름이 잡힌 짤막한 동체에 비해서 잔뿌리는 무척 길고 많았으며 굵은 줄기에  비해  뇌두는  없는 듯  작고  꼬불꼬불  길었다.  잎은 진한 녹색으로 아카시아 잎 정도로 작았으며 꽃대가 올라와 풋딸기 처럼 망울이 맺혀 있었다.  뇌두가 유난히 작고 길다는 점을  빼고는  농가에서 재배하는  인삼과  다르지  않고,  잘 자라지 못한 아주 작은 삼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을 듯 싶었다.

“ 박복한 놈이 심을 봤지요. ”

내가 보기에도 그러리라 짐작하며 조심스레 삼을 살피는 동안의 침묵을 가르고 김씨가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  심이라면 ...... 산삼 ? ”

내가 놀라며 김씨의 말을 되받자 김씨는 금방 울음이라도 터트릴것 같은 딱한 표정이 되었다.

“ 그래서 내 복장이  터집니다요,  나는 못살기는 혀도 머리가 쉬도록 거짓뿌렁은 모르구 살았읍지요.  허지만  내가 산에서 구한 귀물인디 내가 아무리 천한 것이라 해도 내말은 도통 믿는 사람이 없심니다요.”

사흘전에 대성산에 고사리를 꺽으러 갔다가 삼을 캤노라고 사연을 털어 놓는 김씨의 말은 몹시 떨렸다.  산에서 캤으면 심이지,  심은 종자가 다른가,  어디에다 심입네 써 붙인 표식이 있는가,  그걸 속 시원히 알고 싶은  것이 김씨의 고민 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난감했다.  인삼농사나 수매하는  일을 옆에서 지켜보기는 했지만 산삼은 처음이다.  내가 손에 산삼을 들고 있다는 사실 조차도 전혀 실감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신비와 전설로만 여겨온 산삼,  말로나 들었고 사진으로 보기만 했던 산삼을 내가 들고 있다는 사실이 꿈같이 신기하기도 하고,  이름값에 비해 이렇게 초라한 모습일 줄이야 하는 실망이 어지럽게 교차 되었다.

내가  김씨에게 대답해 줄 산삼에 대한 지식은  산삼을 손에 들고 있으면서도 낫 놓고 기역자를 모르는 일자무식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누구나 다 아는 추상적인 상식,  영험한 계시로 선택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자연의 보물,  일체의 부정을 거부하고  신이 베풀 수 있는  생명의 회복력을 가진 영약,  외형이 재배된 삼과는 달리 생육조건이 나빠 대부분 기형이라는 사실 정도 뿐이다.  그러나 내가 들고 있는 산삼을 놓고 스스로 판단하여 보면,  김씨의 말대로 김씨의 산삼을 의심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니었다.

김씨의 순박한 성품과 진솔한 태도로 봐서 김씨의 말 모두가 사실이라고 접어 두더라도 김씨의 산삼은 뇌두를 제외하고는 가삼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뇌두도 사진에서 익혀 본 그런 굴곡과 깊은 주름은 아니었다. 산에서 캤으니 산삼이라 해도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심어둔  장뇌로  짐작할 수 밖에 없는 삼이었다.  그것도 기껏해야 사, 오년근 정도의 하급품이라면 될성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막연한 추측일 뿐이므로 김씨에게 그렇게 말해줄 자신은 없었다.

“ 첫날은 너무 황송하구 좋아서 제 정신이 아니었읍죠.  임자만 만나면 팔자 고치는 귀물이 심 아니던가요.  이제는 내 팔자도 말년에 확 터졌구나 해서 하눌님 은덕에 감사 드렸습니다요.  하늘님이 주신 은혜를 헤푸게 발설하면 동티가 붙을까봐 말도 못하고 또 어느놈이 내몸에 칼을 디밀지 알 수도 없고......  귀물이 상할까봐 장독대 옆 채마전에 묻어 두고 두 늙은이가 밤새도록 입초를 섰읍니다요.“

김씨는 청자 담배를 세대씩이나 줄 담배로 물고 있었다.

“ 수소문해서 알아보니 달포전인가 그 대성산에서 심을 넷이나 본 사람이 있었답디다. 그 양반은 하나에 상답 한마지기 값을 주고 팔았다고 합디다. 그렇게만 된다면 내 평생 처음 만져보는 횡재입죠. 그래서 다음날 심을 이렇게 싸들고 살만큼 사는 알만한 사람 몇을 찾아 다니며 작자를 찾았지만 구경만 하고는 고개를 설설 내둘릅디다.  못믿겠다는 건지 돈이 엄청날거라는 지레짐작인지 운도 안뗍디다. 그래서 오늘은 누가 일러준대로 한약방을 찾았읍죠,  한약방에서는 아예 문전 박대만 당했구랴.  기가 막히고 세상 인심 더럽게 버렸다고 하늘에다 침을 밷고 싶구만...... 나처럼 심을 팔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나...... 그런데 그 작자들이 거지반은 가짜다 이겁니다. 겉으로는 어수룩한 촌놈 행색이지만 속은 시커면 구렁이가 그득찬 놈들이라나, 그러면서 너도 한통속이니 현찰로는 단 돈 만원에도 살 수 없다 이겁니다.”

“ 진품인지 물어나 보시지요 ? ”

“ 그게 복장 터질 노릇입죠. 어느 한 놈 딱부러지게 일러주는 놈은 없고 농반진반 이죽거리기만해서 속만 우굴우굴 뒤집혀 환장하겠소 .”

“ 심을 보면 하늘에서 황금단지 떨어지는 횡재하는 줄만 알았지 세상인심이 야속해질 줄 알기나 했소. 속이 염전 말리듯 타들어가니께 벌쩌 사흘을 꼬박 물만 먹고 곡기를 끊고 저런 화상을 하고 담배만 굴뚝처럼 쳐대니, 심이 사람 잡것소. 홧김에 서방질 한다고 무병장수나 하자고 두 내외가 딱 갈라 깨물어 먹고 싶지만 얼마 짜리나 되는지 알고  먹어야 속시원히 남헌티 자랑이나 하지 아니것소. ”

김씨 부인도 투정하듯 참예를 했다.  그들의 속타는 심정이야 모를 리가 없었다.  진짜 산삼인지,  가격으로 얼마 짜리나 되는 물건인지,  당신 회사에서는 이런 물건을 사지 않는지,  어디를 가면 제값에 팔 수 있는지,  그러한 간절한 물음에 나도 답답하여 더 이상 앉아 있을 염치가 없었다. 그래서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도망치듯 김씨 집을 빠져나왔다.

다음날 나는 출근하자 마자 김씨의 산삼 이야기를 직원들에게 해 보았다.  김씨의 말처럼 가짜라는 생각이 지배적일 뿐  누구하나 관심두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비로서 김씨의 울분에 찬 표정이 그랬듯  세상으로 부터 배신 당했다는 괴리감을 느꼈다.

한국에서 인삼은 농작물이나 상품 이상의 것이다.  최고의 토산품이고 한국인의 전통과 자존심의 결정체이다.

세상이 변해  자동차,  옷감,  냉장고가 불티나게 수출되고  있어도,  그것은 속된 말고 싸구려에  덤을 얹어줘야  되는  장사들이다.  국제시장에서 제값을 받는  물건은  인삼 뿐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인삼은 역시 고려인삼이다.

고려때도, 조선때도, 지금도 그렇다.  인삼은 작고  메마른 이 땅에 유일하게 내려준 자연의 보물이다.  그러한 인삼의 탯줄인 산삼이,  김씨의 산삼이 천덕꾸러기가 되어 시궁창에서 썩어가고 있다는 현실이 너무도 슬펐다.   우리나라 어디쯤엔가 산삼 자생 군락지가 있어서  신비로운 모습을 세상 사람들이 와서 보고 싶어했어야 한다.

시멘트로 덕칠을 해서 숨이 막히는 빌딩 숲보다, 정형수술 흉터자국 뿐인 사찰 보다는 '오늘은 설악산에서 심마니가 되어 “ 심봤다 ‘를 외쳐 보십시요'라고 관광안내 책자를 찍어낼 수 있었다면 얼마나 매력있는 유혹이었을까.

자생지가 없으면 종자를 뿌려서라도  설악산 울산바위 근처에 자생지가 형성되도록 하자.  자생지를 비싼 입장료로 구경시키고 바가지  씌운 비싼값에 산삼쥬스 한 잔 갈아  먹여도 욕될 것은 없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과학적 근거에 의한 약리적 규명이 없다는 것이나 그것은 실험대상인 산삼이 워낙 희귀해서 불가능했다 치더라도, 가치를 가려낼 공인력 쯤은 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그 공인력을 믿고, 사고 파는 시장이 있었더라면 진부조차 몰라 고민하고,  믿지 못해 사고 팔지도 못하는 산삼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러한 착찹한 심정을 하루 종일 떨쳐 버리지 못하고 끝내 퇴근길에는 한약방을 찾아 나섰다.  진정 산삼이 무엇인지 어떻게 생겼는지라도 알아 내리라 마음 먹었다. 인삼을 전매까지 하는 나라의 전매기관에 있는 내가 모르면 누가 알것인가.  오죽했으면 김씨가 나를 찾았고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는 나를 보고 비웃는 소리가 옆에서 들리는것만 같아 괴로웠다.

김씨의 말은 사실이었다. 어느 한의사도 산삼을 캤노라는 나의 말에 말대꾸 조차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다음날은 꾀를 내어 산삼을 구하러 다녀 보았다.  집안 어른이 암으로 곧 돌아가시게  되었는데  만약이 허사이므로 마지막 소원인 산삼을 구해 드리려 한다고 제법 그럴 듯 하게 꾸며낸 이야기로 사정 설명을 하고 통사정으로 매달려 보았지만 미친사람 취급이 고작이었다. 좀 낳다는 사람이 정 그렇다면 시장에서 수삼이나 한뿌리 사다 드리라고 권유할 뿐이었다. 누구도 모르는 산삼,  헛돈 쓰지 말고  마음이나  편하게  해드리라는 고마운 충고였다.

셋째날에도 마찬가지 였다.

그러나 한 건재상에서 약초를 팔러온 노인을 만난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산삼을 꼭 구해야 할 특별한 사정이라면 종로에 있는 심마니 연락처로 가라고 걸레처럼 헤진 명함을 보여 주었다. 약초 연구소였다.

마대자루 서너개에서 이름모를 풀뿌리를 모아 놓고 일일이 저울로 달아가며 흥정하는 노인을 두시간이나 참고 기다렸다가 대포 한잔을 권하자 마다하지 않고  따라 나섰다.  우선 요기부터 할란다고 순대 한 접시를 금새 비워버린 노인은 이야기도 하기전에 허허로이 웃기부터 했다.

“ 나도 심은 딱 한번 봤우,  근데 그게 허깨비더구만......”

김씨의 사정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노인의 경험담 이었다.

“ 심이야 산에서는 굉장한 것이제,  매일 산에 오르면서 서낭당에 촛불 피워 비는 소원이 그게고,  심을 막상 보는 순간 눈물이 막 쏟아지데.  일생소원 성취했구나. 그저 하늘님 고맙심니다. 신령님 고맙심니다......

그런데 그 심이 산에서 내려오니 심이 아니더란 거여.  말짱 헛거였어.  꿈 같아.  곤한 잠 설치며 꿈을 꾸다 깨어보면 준것도 없는데 몽땅 잃어버린 것 같은 거,  그럴때가 있을거여.  바로 그게 심이우. 이제는 나이들구 늙으니 꿈도 안꿔, 이젠......“

노인은 몇 개 남지 않은 잇빨로도 순대는 잘도 씹어 넘겼다. 술도 아예 양재기에 소주 한병을 다 따라 놓고 기갈들린 사람처럼 냉수 마시듯 마셨다.  잔술은 감질나서 못먹는 성미라고 했다.  성미대로 노인은 이마에 땀도 식기전에 이야기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채 시골가는 막차 시간이 되었다며 일어섰다.  아쉽기는 하지만 할 수 없이 노인을 따라가며 급한대로 가장 궁금한 산삼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물어 보았다.

“ 뿌렁지로 봐서는 알아낼 재간 있나,  전차 만별인걸,  장님 코끼리 만지기지,  굵은놈 본 사람 굵다고 할께고, 가는놈 본 사람 가늘다 할께고 그런거지,  그런데 뇌두는 분명히 달라 주먹이 못생겼고  크고  길지,  뇌두가 나이테야,  장뇌도 그렇긴 하니 그런것 까지 구별하라면 아무도 못해,  천종이 따로 있나,  그씨가 그씬걸. 그저 말쟁이들이 천종입네,  장뇌입네,  가삼입네 그러는 거지, 줄기는  하얗고,  잎사귀는 끝에 하얀 잔털이 가시처럼 나 있던가 그랬어,  내가 본 것은 그랬어,  지금도 눈에는 선하구만 그랴. ”

노인은 걸음걸이가 무척 빠르고 씩씩했다. 내가 먼저 인사를 하고 돌아서서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가고  있을 때 노인이 부르는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노인이 부르는 손짓을 하고 있었다.

“ 심은  말이지 캘때도 그랬고,  방에 두어보니 그렇고,  냄새가 유별나,  아주  진한 삼내가 진동을 했어.  냄새  하나는 참 좋아.  심을 살려거든 절대로 캐놓은 물건을 보지말아.  진짜 심마니는 심을 보고는 캐지를 않아,  작자가 나타나면 같이 가서 캐는게 심마니 법도야,  명심해 ”

밤은 늦었지만 피곤하지는 않았다.  그만해도 이젠 실타래의 매듭은 푼 셈이다.  내일은 김씨와 늦기전에 서울에 가야한다.   심마니들의 연락처이고 약초 연구소라는 상호로 약초 중개업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김씨의 궁금증이야 풀리고도 남을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집에도 들르지 않고  바로  김씨 집으로 김씨를 찾아 갔다.

한참이나 문을 두드려서야 김씨 부인이 치마끈을 동여매며 마지 못해 문을 열었다.  방안에서는 김씨의 코고는 소리가 요동을 치고 있었다.  내가 삼 이야기를 하자 김씨 부인은 마루에 허무러지듯 주저 앉으며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 심인지 개똥인지, 남 존일만 시켰소 ”

김씨 부인은 분통이 터져 죽을 시늉을 하며 눈물부터 주먹으로 찍어냈다.

“ 선상님이 댕겨간 그 다음날 저 양반이  또 나가 본다고 심을 들고 나갔는디  한나절도 못되서 멀쩡하게 생긴 젊은놈 하나를 데불고 왔소,  다짜고짜 서울을 간답디요.  작자가 나섰다고,  나한테 노자 타가지고  좋다고 그러구 나갔는디 사흘이 되도록 기별이 없소, 죽은건지 산건지 별 궁상스런 생각으로 속이 끓던 참에 방금 전에 저렇게 고주망태기가 되어 온기지라.”

“ 팔았군요 ?  ”

“ 팔기야 팔았것지 ”

“ 진짜랍니까 ? ”

“ 일자무식이 말이나 제대로 전하것소.  장뇌라나 뭐라나 이십년은 넘은 물건이라요 .”

“ 얼마나 받았을까요 ? ”

“ 헛거랍소, 나도 영감이 산송장이 되어 들어 왔길래 몸뚱아리에 전대라도 찼는가  훑어봤소. 땡전 한닢이 없길래 어찌된 연유냐고 닥달을 놨지러,  대명천지에 변도 이런 변이 있나. 기가막혀 말도 못하것소......”

김씨 부인은 치미는 울화를 참지 못하고 곡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 젊은놈에 홀려서 무슨 한방 연구소라나 하는 으리으리한 데루 끌려간 저 영감은 시키는대로 무슨 박사헌티 인사를 하고  심을 보재서 뵈드렸더니  좋은 삼이라고  탄복을 하며 감정서를 끊어주더랍소.  그러구는 감정서 값으로 이십만원을 내라 이것인디.  돈이  없다니께 박사놈이 말이   감정서만 있으면 작자는 서울시내에 쫙 깔렸으니 우선 감정서나 받고 돈은 심 팔어서 내라고  했다오.  고맙다고 코가 문드리지게 절을 하고 나오는 참에 박사놈 말이, 그대신 심은 여기 놓고 가랬나 보오,  그렇게는 몬하것다고 버티니까 나중에는 물건 팔릴 때 꺼정 여기서 함께 있자더라나, 새우잠을 자고 눈치밥 겨우 겨우 얻어 먹으며 사흘을 지켰대여. 그러구 오늘 작자가 나타났다오, 작자란 놈이 삼복더위 삼은 삼도 아니라문서 트집을 잡더니 이십 오만원에서 일원도 더는 못준다고 튕긴 모양이더만요.  심을 보니 하루만 넘기면 소도 안먹을 지경으로 썩은 내가 나고,  할 수 없이 반어거지로 심을 던졌것지러,  감정서 값 떼고,  밥값 떼구 구걸하다시피 노잣돈 겨우 얻고,  술 한잔 얻어 먹고 몸뚱이 하나 겨우 건사해 가지고 와서 저렇게 자빠져 자고 있소......”

나는 갑자기 현기증이 일어 기둥을 잡고 일어나 하늘을 쳐다 보았다.  까만 하늘이 동전만큼 작아져 실 끊어진 연처럼 날아오르고 있었다. 끝.

1998.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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