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생각하기 나름

재정이 할아버지 2017. 5. 5. 04:47

경비원이 돌아 왔다

청소원은 일년 내내 우리집 주변을 열심히 청소한다

정원사도 그저께 와서 공원을 말끔히 정리하고 갔다

마누라하고 나는 소파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경비원이 경비를 잘 서는지, 청소원이 청소를 잘 하는지, 정원사가  나무손질을 꼼꼼하게 하는지 지켜만 본다

우리집 앞에는 주막공원이라는 어린이 놀이터가 있다

어린이 놀이터가 주막공원이라는 특이한 이름이 붙은 것은 마을이 개발되기 전에 주막이 있던 자리에 공원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는 10년 전에 이집으로 이사를 왔다

모두 아파트로 이사를 가거나 살고 있을 때 우리는 아파트에서 살다가 3층 짜리 상가주택으로 이사를 왔다

땅 모양이 마름모 꼴이라 집도 반달 처럼 지었고 거실이 둥근 특이 한 형태의 집인데 그 때문에  공원이 파노라마 처럼 한눈에 들어온다

집 모양이 반듯하지 않아서 사려는 사람이 없었지만 나는 창밖으로 보이는 공원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 동네는 교통이 불편한 오지이지만 창밖으로  나무 숲만 보여서 도시에 살고 있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고 온갖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끊이지 않아서 전원 주택기분도 난다

모두가 아파트를 선호하던 시기에 상가주택으로 이사를 온 연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아파트는 답답하다며 담배가게가 딸린 상가주택으로 이사를 가자고 했었다

그러나 그때는 상가주택을 살 돈이 없었고  아이들도 어려서 실천을 하지 못했다

두번째는 직장에서 받은 퇴직자 사회적응 교육 영향이다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는 정년이 임박한 직원들에게 퇴직 이후 삶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있었다

수안보 수련원에서 2박 3일로 실시하는 그 교육에서 첫 시간에 강사가 던진 토론 주제는 "내가 100살 까지 산다면 축복인가?"이었다

처음에는 우스개 소리로 들리던 그 말이 토론이 시작되자 모두를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하였다

선배 퇴직자들이 나와서 경험을 들려주고 각 분야 전문가들은 토론 중간 중간에 조언도 들려 주었다

건강관리, 재산관리,  법율상식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 교육목적이었다

그런데 퇴직 선배가 아파트는 살기는 편하고 좋은데 관리비 문제도 은퇴자에게는 큰 부담이라면서 수익성이 있는 상가주택을 권해서 상당히 큰 공감을 받았다

그때는 상가건물 인기가 없어서 아파트 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았다

그래서 상가주택으로 이사를 왔는데 처음에는 후회스럽고 불편한 것이 많았다

교통이 불편한 것은 참을만 했지만 추운것이 제일 큰 고통이었고, 전기,수도의 소소한 고장도 내손으로 하지 않으면 안되니 그것이 힘 들었다

그런 적응 기간이 지나고 여유가 생기니 창밖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공원에 나뭇잎이 우거지는 여름에는 그 그늘이 노인들의 쉼터가 된다

공원의 벤치는 모두 우리집을 바라보게 되어 있어서 이른 아침 부터 밤 늦게 까지 노인들이 앉아서 우리집을 지켜 본다

그래서 그 노인들을 우리는 우리집 경비원이라고 부른다

공원 옆에는 동사무소가 있다

동사무소 앞이고 마을 입구이다 보니 새벽에 청소원이 모여서 청소가 시작되는 곳이다

청소원 뿐만 아니라 할머니 자원봉사, 학생 자원봉사  청소 시작이 우리집 앞이라 하루에도 몇 차례 청소하는 사람들이 지나 간다  

공원에 잡초가 우거지거나 나무가 조금 자랐다 싶으면 조경 작업자들이 떼로 몰려와 나무손질을 하고 간다

그런 모습들을 바라보면 마누라하고 나는 왕이된 기분이 든다

비록 조그만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지만 넓은 정원이 있는 대저택에서 경비원과 청소원과 정원사 까지 부리고 사는 기분을 느끼고 산다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산다

근시는 가까운 것만 보고, 원시는 멀리 있는 것만 본다

색안경을 쓰면 세상이 안경색으로만 보이고 시력을 잃은 사람은 그나마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산다

후미진 외곽 마을에서 삐딱한 집에 살아도 내가 좋으면 왕국이다

나라에서 만든 공원도 내집 앞에 있으면 우리집 정원이라고 생각하고 살면 되고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도 나를 위해서 일한다고 생각하면 내가 왕이다

사람들은 각자 그렇게 저 잘 난 맛에 산다

생각은 하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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