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수구초심(首丘初心)

재정이 할아버지 2017. 5. 1. 14:53

내가 안경을 쓰기 시작한 것은 40대 중반이다

컴퓨터를 배운다고 몇 년간 눈을 혹사 시켜서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눈이 나빠서가 아니라 서류를 볼때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워서 시력 보호 때문에 안경을 썼다

그러다가 안 읽던 책을 몇 년 보았더니 하루가 다르게 시력이 나빠졌다

지금은 나이에 비해서 원시가 빨리 와서 가까운 것은 안경 없이는 잘 보지 못한다

원시는 멀리 있는 것은 잘 보지만 가까운 것을 잘 보지 못하는 노인성 질환이다

나이가 들면 신체 모든 것이 변하는데 특이한 것은 슬퍼서 울 때는 눈물이 안나오고 기뻐서 웃을 때 눈물이 난다

몇 시간 전의 일은 기억을 못하는데 학교 다닐때 기억은 생생하고 친구 이름과 얼굴도 또렸하다

눈과 눈물과 기억의 변화는 퇴직이 임박한  고등학교 선생님이 너희들도 나이가 들면 알 것이라고 알려준 이야기인데 내가 지금 그렇다

나만 그런것이 아니고 우리 연배는 모두 그런것 같다

오페라 무대가 화려해도 판소리 한마당이 마음에 와 닿고 K-POP가수의 노래가 현란해도 나훈아 노래만 못하다  

전혀 연락이 없던 고향 친구가 애경사에서 만난 친구들과 연줄 연줄 물어서 연락이 온다

막상 만나보면 서로 얼굴도 못 알아볼 정도로 세월이 흘렀고 낯선 얼굴만큼 살아온 여정도 다르지만 한올 한올 기억을 풀어내면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는 마력이 있다

엊그제 까지 같이 근무하던 직장의 동료들은 몇 년 사이에 가물가물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는 것과 대비 되는 일이다

며칠 후에는 학교 학보사에서 일했던 선배들과의 모임이 있다

공직에서 근무하다가 은퇴를 하고 나서야 내가 보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나는 성격이 내성적이라 스스로 누구를 찾아 다니는 것을 어려워하고 부담스러워서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터라 선배들을 만나기에 앞서 미안하고 만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벌써 걱정이 된다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그렇게 절친하게 지냈으면서도 보고 싶고 그리울 때 만나지 못하고 이제는 한물간 노인이 되어서 만나는 것이 미안하다

잠시 만나서 옛날 추억과 살아온 과정의 우여곡절을 회포하고는 다시 각자의 길로 가야 한다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의 이야기나 글에서 효도하지 못한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 친구들과의 어설펐던 우정을 많이 떠올리는 것은 노인의 기억력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넓은 바다에서 젊은 날을 보내고 꿈을 펼치다가  태어난 고향에서 생을 마감하는 연어 모천회귀처럼 사람들도 인생을 정리할  때가 되면 고향으로 마음가는 모양이다

수구초심, 여우가 죽을 때는 고향쪽으로 머리를 두고 죽는다는 말인데 세상에 태어나서 걱정 근심없이 살던 그때가 지나고 보니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라서 그렇가 보다

고향 친구들을 만나서 술 한잔을 나누며 개구쟁이 처럼 수다를 떨다 집을 돌아간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안에서 화창한 봄날은 눈이 부신데 이유없이 눈물이 난다

친구들을 만난 기쁨의 눈물인가, 아쉬움이 많은 지나간 세월에 대한 회한의 눈물인가     

 

* 한자가 안되는 것으로 알았는데 우연히 알아 냈습니다. 나도 한자를 잘 모르지만 어쩔 수 없이 써야할 때는 배워서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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