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고양이

재정이 할아버지 2017. 4. 27. 16:30

마누라가 현관을 열고 나가려다 비명을 질렀다

깜짝 놀라 따라가 보니 누가 현관 앞에 똥을 싸놓고 갔다

아랫층에 횟집이 있으니 식당 손님들이 올라와서 담배를 피우고 가는 일은 가끔 있어도 화장실을 두고 계단에 똥을 싸고 가는 것은 황당한 일이다

길 건너 공원에 깨끗한 화장실이 있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다 아는데 급하면 그 화장실을 이용하지 남의 현관에 똥을 쌌다면 예삿일이 아니다

내집에서 그런 일이 생기니 기분이 나쁘다

나에게 나쁜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생각해 보지만 그것은 아니다

도둑이 물건을 훔치고 나서 집안에 똥을 싸고 간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도둑이 든 것이 아닌지 살펴 보았지만 그것도 아니다

누가 왜 그랬는지 알 수 있으면 알아보는 것이 필요할것 같아서 마누라하고 현관의 똥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똥의 모양으로 봐서는 사람의 것 같기는 한데 어른은 아니고 어린 아기똥 같이 가늘고 양도 적다

똥과 같이 싸 놓은 오줌의 양도 많지는 않다

가게 앞에 CC TV도 있으니 사람이 그랬다면 범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우선 더러운 똥 부터 치우려고 빗자루를 가지러 옥상으로 올라 갔다

옥상으로 갈려고 3층 계단을 돌아 서는데 계단 끝에 고양이 한마리가 잔뜩 웅크리고 나를 노려보고 있다

골목에서 자주 보던 흰색 고양이다

집에서 기르던 애완용 고양이가 버려져서 길 고양이가 되었다고 마누라가 가끔 밥도 주던 그 고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 고양이는 항상 우리집 주변을 맴돈다

낮에 1층 열린 현관으로 들어 왔다가 밤중에 문을 닫으니 나가지 못하고 계단에 있었고 똥 까지 싼것이 틀림이 없다

나는 이제 까지 고양이 똥을 보지 못해서 그것이 고양이 똥이라는 확신은 없다

고양이는  배변을 하면 땅에  묻어서 흔적을 남기지 않기 때문에  집안에서 고양이를 길러 보지 않은 나는 고양이 똥을 볼 수 없었다

사람이 한 짓이 아니고 고양이 짓이라니 마음은 놓인다

고양이 하는 짓은 꼭 마누라 같다    

고양이는 개와 달리 아무리 정성을 다 해서 길러도 주인을 못 알아 본다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것 같은데 혼자 사는 습성 때문에 사람에게 가까이 오지 않는것 같다

내가 은퇴를 하고 집에 눌러 앉아 살아 보니 우리집은 마누라 집이었다

항상 혼자 살던 습관 때문인지 나하고 같이 있는 것을 힘들어 하고 마누라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하면 발톰을 세우고 으르렁 댄다

고양이는 야행성이라 낮에는 따듯한 곳에서 잠만 잔다

마누라도 자정이 넘도록 TV를 보며 혼자 키득거리기도 하고 말도 한다

낮에는 소파나 따듯한 구석에서 쪼그리고 쪽잠을 자면서 내가 말을 거는 것도 싫어 한다 

고양이는 시간이 나면 제몸을 핥고 발톱으로 긁어서 항상 모양을 낸다

마누라도 시간이 나면 거울 앞에 앉아서 머리나 얼굴을 닦고 털고 문지른다

고양이는 덩치에 비하면 아주 조금 밖에 안먹는다

마누라도 밥을 찔끔 먹고, 밥을 먹고 나면 빵 먹고, 빵 먹고 나면 과일 먹고, 과일 먹고 나면 과자 먹고, 하루 종일 찔끔 찔끔 무엇인가를 먹고 있다

마누라나 고양이가 하는 짓이 같다고 생각하니 고양이가 똥을 싸고 간 것이 화가 난다

똥을 치우려고 들고 있던 빗자루를 집어 던지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마누라가 왜 그냥 들어 오느냐고 성질을 낸다

"네 똥 네가 치워!'

나는 밥을 굶을 각오를 하고 대차게 소리쳤다 

'생원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구초심(首丘初心)  (0) 2017.05.01
고추를 심었다  (0) 2017.05.01
돼지 흥분제  (0) 2017.04.26
뻔뻔함의 힘  (0) 2017.04.25
  (0) 2017.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