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커피

재정이 할아버지 2017. 6. 21. 05:25

보험회사 직원과 보험계약문제로 커피샾에서 만나기로 했다

집 앞에 있는 커피샾이라 수시로 지나다니기는 했지만 들어와 보기는 처음이다

자고 일어나면 하니씩 생긴다는 커피샾이지만 외국에 온것처럼 낯설고 어설프고 좌불안석이다

커피 이름이 생소하고 무엇을 먹을 것인지 어떻게 먹는 것인지 알 수도 없다

보험회사 직원은 익숙하게 커피를 주문하고 과자하고 빵까지 써비스로 받아들고 왔다

나에게는 제일 무난하다는 아메리카노를 한잔 들고 왔다

내가 아는 커피 이름은 설탕, 프림, 다 넣는 다방커피와 아무것도 넣지 않는 블랙커피, 계란노른자를 띄워주는 모닝커피뿐인데  집에서나 밖에서나 마누라가 주는대로 먹기만 해서 모든것이 혼자서는 어설프다

내 입맛에 아메리카노 커피 맛은 자판기에서 빼먹는 봉지커피 맛만 못하다

젊어서 먹던 다방커피와 자판기 커피에 길들여진 입맛이라 쓰고 밋밋하다

한자리에서 먹기에는 양도 많다

젊은 사람들이 들고 다니며 먹는 이유를 알것 같다

어쩌면 커피는 내 인생과 궤가 같다

6.25전쟁 기간에 태어난 사람을 6.25둥이라고 한다

내가 6.25둥이다

커피는 6.25둥이와 같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발전했다

개화기때 부터 일부에서 마시기는 했다고 하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6.25전쟁이 끝나고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커피가 처음이다

그때는 나이가 어려서 직접 마셔보지는 못했지만 서부영화에서 챨스 브론슨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깡통잔에 마시던 커피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커피뿐만이 아니라 미국영화, 미국노래같은 서구 문화는 모든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미국인들이 먹는 것을 먹고 싶고, 미국인이 부르는 노래를 부르고 싶고,  미국인이 사는것 처럼 살고 싶었다

그때의 추억으로 나는 지금도 챨스 브론슨처럼 깡통잔에 커피를 타서 마신다 

커피는 일반인에게는 비싸고 생소한 고급음료이었다

커피재료가 비싸서 담배꽁초를 우려낸 물로 커피를 끓여서 팔던 다방이 적발되어 뉴스에 나오기도 하였다

내가 처음 다방을 드나들기 시작하던 때가 커피로서는 최고 전성기이었다

비틀즈와 송창식의 노래를 들려주던 음악다방에는 DJ도 있었고 항상 젊은이들이 북적였다

다방에는  미스김도 있었다

커피 심부름을 하면서 말동무를 해주는 미스김의 손은 버스 손잡이처럼 아무나 잡아도 되고 엉덩이는 동네북처럼 아무나 툭툭쳐도 용서가 되는 공간이었다

커피맛 보다는 미스김의 장사수완이 다방영업의 관건이었다 

미스김은 커피를 배달도 했다

다른나라에는 없는 배달커피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커피문화라 외국언론에도 소개되었다

내가 한참 바쁘게 살았던 중장년기는 커피문화의 암흑기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창의력은 대단해서 다방커피 맛과 같은 봉지커피가 개발된 시기이다

봉지커피와  함께 커피 자판기가 등장하면서 거리의 다방들은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다방은 자취를 감추었지만 봉지커피와 커피 자판기는 나날이 발전을 하여 공공기관이나 식당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공짜써비스의 대표로 자리를 잡았다

이제 6.25둥이들은 세상의 주연에서 조연으로 역할이 바뀐 삶을 살고 있다 

내가 직장에서 퇴직할 무렵 부터 커피샾이라는 커피 전문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전세계에서 석유 다음으로 교역량이 많다는 커피는 이제 미국문화가 아니다

온세상 사람들이 즐겨먹는 기호식품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배달커피와 봉지커피를 탄생시킨 커피문화 선진국이다

다방이 전문점인 커피샾으로 변신하여 태어났지만 은퇴자들이 커피를 마시러 가기에는 무척 거북하다

전문점 커피맛이 입맛에 안맞는다

매장도 노루 궁뎅이처럼 좁아서 마음편히 앉아 쉴곳이 없다

바리스타라는 주방장은 눈길도 주지 않는다

침침한 지하실의 퀘퀘한 담배연기가 다방 냄새다

푹신한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달달한 커피를 마시며 미스김과 실없는 농담을 주고 받던 그 다방이 그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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