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주막공원 사계(四季)

재정이 할아버지 2017. 11. 12. 06:32

비가 오려나 보다

간헐적으로 돌풍이 인다

유리창이 들썩이고 찬바람이 방안까지 스민다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에는 어김없이 찾아오는 계절풍이다

마음이 심란하여 창밖을 보니 새떼가 날아 오르듯 할 일을 다한 낙엽들이 바람을 타고 하늘가득 솟구친다

바람이 사그라진 시간에 집앞에 나와 보니 공원이 온통 낙엽으로 묻혀있다

낙엽밟는 소리는 가을의 소리다

낙엽을 밟으며 사색의 시간을 가져본 것이 얼마 만인가

바람부는 길에도 낙엽은 두께를 더한다

은행잎은 새싹도, 푸른잎도 좋지만 노란 단풍잎이 제일 곱다

노랗게 물든 가을 은행잎은 가지에 매달려서 화려하게 세상을 밝혀주다가 때가 되면 한줄기 바람에도 우수수 쏟아져 내린다

노랑색 낙엽나비의 비행은 가을 풍경의 절정이다

새소리처럼 귓가를 맴돌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바람에 실려가고 텅빈 놀이터에는 느티나무의 낙엽만 소리없이 구른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고

노인들의 사랑방이던 벤치

벤치의 자리에도 낙엽이 앉아있다  


나는 공원에서 산다

북향이라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불편한 집이지만 하루 종일 공원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좋아서 하는 말이다

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어서 공원이지 실상은 어린이 놀이터이다

옛날 고갯길 주막자리에 어린이 놀이터가 자리를 잡아 주막공원이라는 특이한 이름이 붙었다

공원 주변으로 유럽풍의 주택이 자리 잡고, 계절의 변화를 수채화처럼 그려내는 숲의 풍광에 반해서 불편함도 참고 산다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자료사진으로 찍어둔 것이 계절사진이 되었다

내방 창가에서 매일 보는 계절의 변화이다 

봄이다

연두색 새싹들이 새롭게 피어나는 봄이다

봄에는 봄바람이 분다

황량한 겨울 끝자락에서 어느날 갑자기 벚꽃이 피고 어느날 갑자기 꽃나비가 되어 봄바람에 날려가는 봄이다

봄은 짧다

봄인가 싶어서 나가보면 봄은 벌써 저만큼 달아나 있다

봄은 짧지만 시작을 알리는 희망의 계절이다  

여름이다

뻐꾸기가 울고, 아카시아 꽃이 피고, 이팝나무 꽃도 만개를 했다

귀가 즐겁고, 눈은 호사하고, 코는 향기를 즐기는 계절이다

사춘기 청소년처럼 질풍노도의 계절이다

모든 생명들이 새생명을 품고, 자라기에 바쁜 계절이다

가을이다

가을은 한해의 수고를 거두고 정리하는 풍요의 계절이다

할 일을 마친 나무들이 낙엽을 떨구듯 생명들이 잠시 쉬기 위해 갈무리를 하는 계절이다

가을바람은 쓸쓸하다

은퇴자들이 자신의 처지를 가을과 같다고 하는 것은 쓸쓸함 때문이다  

쓸쓸하면 혼자있고 싶고 생각만 깊어진다

장년의 갱년기처럼 아파도 말을 못하는 계절이다

시리고 아픈 마음을 감추려고 멀리 떠나고 싶은 계절이다

겨울이다

겨울은 정지된 시간이다

정지된 시간은 쉬는 시간이다

하루의 1/3은 잠을 자듯 세상도 겨울이란 휴식의 시간이 필요하다

계절의 변화가 없는 열대지방은 사람이 살기는 좋은 곳이다

그러나 휴식의 시간인 겨울이 없다보니 열대지방의 동식물은 빨리 자라고, 빨리 늙고, 빨리 죽는다

열대를 상징하는 야자나무 수명은 20년이다

겨울을 상징하는 소나무는 수명을 알 수 없을 만큼 오래 산다

겨울이 있는 세상의 생명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여름에 부지런히 일하고 저축하는 습성을 가졌다

그래서 부자나라는 겨울을 나는 북반구에 위치한다

나는 우리집 풍경 중에서 겨울이 제일 좋다

눈내리는 창가에서 커피를 마시며 봄을 기다리는 겨울이 제일 좋다

희망을 기다리는 시간이라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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