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다람쥐

재정이 할아버지 2017. 11. 14. 06:38

다람쥐

다람쥐가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아침에 살얼음이 얼기 시작했으니 동면에 든 모양이다

등산로 양지바른 바위 위에 오두커니 앉아서 나를 말똥말똥  바라본다

동면을 하다가 날씨가 풀려서 잠시 나와 앉은 것이 분명하다

다람쥐는 전세계 어느 나라나 다양하게 분포하고 사는 귀여운 동물이다

다람쥐는 우리나라 다람쥐가 귀엽고 예쁘다

우리나라에는 날다람쥐, 청설모, 줄무늬 다람쥐가 서식한다

통상적으로 줄무늬가 있는 시베리아 다람쥐를 다람쥐라고 부른다

마침 배낭에 땅콩과자가 있어서 조심스럽게 하나를 던져 주었다

처음에는 머뭇머뭇하더니 쪼르르 달려와서 과자를 입에 문다

하는 짓이 너무 귀여워 과자봉지를 꺼내들고 몇개를 더 던졌다

다람쥐가 용기를 내어 아주 가까이 까지 따라와 양볼이 미어 터지게 과자를 입에 물었다

지금은 애완동물과 반려동물이 종류를 셀 수 없이 많고 다양하지만 소싯적에는 다람쥐가 유일했다

따듯한 봄날 다람쥐가 사는 바위골에 숨어서 장대에 매단 말총 올가미로 잡아서 길렀다

다람쥐를 잘 잡는 친구는 잡아서 시장에 내다 팔아 용돈으로 쓰기도 했다

우리나라 다람쥐는 국내보다는 외국에서 인기가 있어 산업화 초기에는 수출로도 한몫했던 애완동물이다

다람쥐가 애완동물로 인기가 높았던 이유는 자태와 털빛이 곱기도 하지만 친화력이 있어 사람을 잘 따르기 때문이다

잡은 다람쥐는 나무상자에 넣어 두고 도토리, 감자, 고구마를 먹여서 키웠다

쳇바퀴를 돌리는 묘기는 매력 만점의 애완동물 진수다

나는 딱 한번 다람쥐를 애완동물로  길러 보았다

이른 봄에 마누라와 고사리를 꺽으러 산에 갔었다  

한참 고사리를 꺽고 있는데 낙엽속에서 다람쥐가 튀어 나왔다

놀라서 튀어 나온 다람쥐는 기껏 달아난다는 것이 고사리를 담는 자루속이었다

탁구공 크기만한 어린 새끼 다람쥐이었다

온종일 고사리를 꺽는 동안에도 다람쥐는 자루속에 숨어서 달아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다람쥐 새끼는 우리집으로 데려오게 되었고 아파트 베란다에서 키웠다

등쪽에 다섯개의 세로줄이 선명한 시베리아 다람쥐다

해가 뜨면 베란다 양지쪽에서 길고 탐스러운 꼬리를 치켜 세우고 살랑 살랑 흔든다

밤을 주면 제몸보다 더 큰 밤을 두발을 움켜쥐는 갉아먹는 앙증스러움

잠자리로 넣어준 양말 속에 파고 들어가 웅크리고 자는 모습

마누라와 아들이 베란다 유리창 너머에서 보여주는 다람쥐의 요정같은 몸짓 하나하나에 넔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상자에 가두지 않고 베란다에서 자연상태로 키운다는 생각이 잘못이었다

내가 베란다에 나가면 다람쥐는 쏜살같이 달려나와 발등을 타고 오르기 시작해서 어깨까지 오르내리며 애교를 부렸다

너무 친화력이 좋은 것이 문제였다

무심코 베란다에 물건을 꺼내러 나갔다가 발밑에 달려드는 다람쥐를 보지 못했다

날카로운 다람쥐의 비명소리를 들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다람쥐가 내발에 밟혀 죽고 나서 나는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다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다람쥐가 갑자기 찾아오고, 갑자기 가버린 뒤에 그 슬픔으로 1년 가까이 무기력한 시간을 보냈다

우울했던 세월을 어렵게 극복하면서 다시는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으리라는 결심도 하게 되었다

야생동물은 야생에서 자라고 야생에서 보고 즐기는 것이 맞다

정성껏 먹이를 주고 잠자리를 보살펴도 야생의 품속과 같을 수는 없다

우리나라 야산에서 흔하게 보던 산토끼와 다람쥐의 개체수가 급격하게 줄어든다고 한다

예전처럼 산토기를 잡아서 먹거나 다람쥐를 잡아서 팔기 때문만은 아니다

집에서 기르다 버린 개와 고양이가 야생화되면서 생존경쟁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다

오랫만에 등산길에서 만난 다람쥐

나의 욕심으로 우리집 베란다에서 내발에 밟혀 죽은 다람쥐를 생각하니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

볼테기가 터지도록 과자를 물고 바위틈으로 사라진 다람쥐를 기다리며 나는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있었다

다람쥐가 다시 나오지는 않았지만 제 새끼들과 내가 준 과자를 먹고 있다면 내 잘못도 조금은 씻어지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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