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대봉감 홍시

재정이 할아버지 2017. 11. 2. 06:58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엄마가 생각이 난다
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주던
울엄마가 생각이 난다,,,,,,

나훈아의 "홍시"라는 노래가사 서두다

홍시의 계절이 돌아왔다

공무원을 퇴직하고 시골에서 소를 키우는 친구가 감을 따러 오라는 기별이 왔다

해마다 이맘때면 겨우내 먹을 대봉감을 선물하는 친구다

감은 대추, 밤, 배와 함께 우리나라 토속 과일이면서 제수에도 필수다

일본, 중국, 우리나라 일대가 원산지라 종류도 많고 이름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과일이다

먹는 방법도 다양하다

탄닌성분인 떫은 맛을 우려내서 생으로 먹기도 하고, 말려서 곶감을 만들기도 하지만 나는 달달한 홍시를 좋아 한다

홍시 중에서도 크기가 왕이고  맛도 최고인 대봉감 홍시는 추운 겨울날 간식이다

첫서리를 맞은 감을 따서 상자에 담아두고 숙성시키면 홍시가 되는데 추운 겨울에 먹어야 제맛이다

농사짓는 친구가 바쁜 추수철이라 대봉감은 내가 가서 따온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구나 감에 대한 추억이 한둘은 있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아들이 초등학교를 다닐때 인근에 있는 계족산성이 보고 싶다고 했다

추운 겨울이었다

계족산성은 계족산에 있는 백제시대의 성이다

집에서 빤히 바라다 보이는 계족산에 있는 성이라 너무 쉽게 생각했다

금방 다녀올 수 있거니 생각해서 아무 준비도 없이 산에 오른것이 잘못이다

계족산성 가는 길 중간에서 잘못된 이정표를 따라 가다가 길을 잃고 말았다

추운 겨울이라 물어볼 사람도 없고 가도 가도 성은 나오지 않고 방향마저 잃었다

두세시간 산길을 헤메고 나니 배가 고프고 기진하여 성 구경을 포기하고 산 아래로 내려왔다

내려와서 보니 집과는 반대편이었다

요깃거리를 살 가게도 없고 물이라도 얻어 마실 집도 없는 들판에서 마누라와 아들은 지쳐서 쓰러질 지경이었다

시내버스를 타려면 한참을 더 걸어가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길가에 커다란 고욤나무가 보였다

우리나라 산에는 야생종 과일인 고욤과 아그배가 있다

고욤은 감의 야생종이다

고욤나무에는 까맣게 익어서 얼어붙은 고욤이 달려있었다

추운 겨울날 친구들과 고욤을 작대기로 털어서 주워먹던 생각이 났다

장대를 주워다 고욤을 털어주니 배고픈 아들과 마누라는 맛있다며 정신없이 주워먹는다

도토리만한 열매에 씨가 서너개씩 들어있으니 먹을 것도 없지만 달기는 해도 맛도 별로다

너무 배가 고플때 먹어본 고욤이 식구들에게는 잊지 못하는 과일이 되었다

친구의 밭에는 첫서리를 맞은 대봉감이 실하게도 열렸다

친구의 대봉감은 일본에서 얻어온 신품종으로 크기가 큰 배만큼 크고 당도가 높아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장대로 잘 익은 홍시를 하나 따서 마누라에게 먼저 주었다

소담한 홍시를 두손으로 받아들고 마누라가 갑자기 파안대소를 한다

잘 익은 홍시는 맛도 좋지만 말랑말랑한 촉감과 크기와 모양이 노래가사에 나오는 어머니 젓가슴과 같다

마누라가 대봉홍시를 받아들고 웃음을 터트린 이유도 그런 연유 때문이다  

나의 직업은 장기출장이 많았다

한번 떠나면 보름정도 걸리고 한달이 넘는 경우도 허다했다

나훈아의 "홍시" 노래가 유행할 때이다

출장지에 가서 마누라가 싸준 가방을 풀어보니 이상한 상자가 들어 있었다

상자를 열어보니 커다란 대봉감 홍시가 메모와 함께 들어있었다

"나라고 생각하고 붙잡고 주무세요"

출장중에는 여관방에서 불편한 잠을 자야 했지만 마누라가 싸준 홍시를 붙잡고 잠을 자니 정말 부드럽고 편해서 잠을 잘 잘 수 있었다

이후로도 홍시철에 출장을 갈때는 한번씩 대봉감 홍시를 싸주던 마누라였고 그것이 생각난 것이다

마누라와 함께 감을 따면서 오랜 세월을 함께 살다보니 별것아닌 홍시에도 남모를 추억들이 배어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소설도 영화도 별것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이  영화이고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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