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10원짜리 동전

재정이 할아버지 2017. 12. 14. 06:48

길을 가다가 10원짜리 동전을 주웠다. 아내는 더럽게 그런 것을 왜 줍느냐고 가재눈을 한다. 주운 10원짜리 동전은 황동주화였다. 화폐가치는 10원이지만 주화 재료인 구리 가치는 30원이나 되는 기이한 동전이다. 10원짜리도 돈은 맞지만 경제활동에서 거의 사용을 하지 않으니 요즘에는 보기도 힘들다. 새로 나온 10원짜리 동전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서 너무 가볍고 모양도 이상해 양복 단추만도 못하다.. 그래서 길에 떨어진 10원짜리 동전은 아이들도 줍지 않는다

 

1973년 11월 26일에 공무원이 된 나의 첫 봉급은 40원이었다. 노란 봉급봉투에 기본급과 수당 몇 가지를 더해서 봉급액이 나오고, 세금 등 공제금을 빼고 난 실수령액이 40원이었다. 공무원으로 5일을 근무하고 받은 내 첫 봉급봉투에는 10원짜리 황동 주화 4개만 달랑 들어 있었다. 정확하게는 월급이 아니고 5일분 일할 계산액에 이것저것을 공제액하고 기숙사비 까지 떼고 나니 40원이었던 것이다. 당시 한 달 봉급은 2만 원이 조금 안 되었고 쌀 두 가마니 값이었다

 

봉급봉투에서 달랑거리는 40원을 들고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이런 박봉에도 공무원으로 남아 있어야 하나, 아니면 다른 길 어디로 가야 하나, 40원으로는 무엇을 할까, 서글픈 고민을 했다. 나는 아직 학교도 졸업하지 않았고, 군대도 다녀오지 않았기에 급할 것은 없었다. 조금 더 견뎌보고 군대에 다녀와서 더 좋은 직장을 구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당시에 주전부리로 인기 있던 라면땅이라는 과자가 10원이었다. 첫 봉급 40원으로 라면땅 4개를 샀다. 첫 봉급은 부모님 빨간 내복을 사드리는 돈이라는데 내복은 고사하고 양말도 살 수 없는 돈이다. 라면땅을 조카들과 나누어 먹으며 세상의 찬바람을 가슴 시리게 받아들인 추억의 10원짜리 동전이다

 

10원짜리 동전은 어엿한 돈이지만 남자 젖꼭지처럼 제 구실을 못 하는 돈이다. 10원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 없기 때문이다. 못 난 친구를 10원짜리 동전이라고 놀리기도 한다. 고약한 사장이 아르바이트 청년에게 얼마 안 되는 급여를 10원짜리 동전으로 주어서 주고도 욕먹은 돈이다. 못된 정치인의 잘못된 처신에 대하여 18원을 정치헌금으로 보내며 분풀이하는 것도 10원짜리 동전의 가치다

 

주운 10원짜리 동전을 들고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10원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 있느냐고 물으니 종업원 젊은 아가씨가 무엇이 필요하냐고 되묻는다.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헛소리를 하는 것을 보고 귀찮아서 원하는 것을 그냥 드리겠다는 말이다.

나도 10원짜리 동전의 가치를 알고 싶었을 뿐 사고 싶은 것은 없었다. 첫 봉급 40원의 가치가 지금은 얼마의 가치인지 알고 싶었을 뿐이다 . 40원짜리 월급쟁이로 시작해서 참고 또 참으며 참 질기게 살았다. 그 직장에서 37년을 근무하고 정년퇴직을 했다. 돌아보니 하찮은 10원짜리 동전을 모아서 백원을 만들고 백원을 모아서 만원을 만들고 그 만원을 모으고 모아서 일억을 만드는 과정, 그것이 나의 인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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