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유통기한

재정이 할아버지 2017. 12. 20. 06:51

아내는 저녁 늦게 마트에 간다. 낮에는 빈둥거리다 왜 어두운 저녁에 장을 보러 가느냐고 나무랐더니 그때가 에누리하는 물건이 많은 시간이란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 퇴근 시간에 맞추려고 그러는가 싶었는데 아내 이야기는 그것이 아니었다. 신선 채소나 생선, 떡, 과일은 유통기한이 짧은데 하루를 넘겨서 상할 염려가 있는 상품은 늦은 저녁에 평상시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으로 판다는 것이다. 상품으로는 조그만 흠결도 팔 수 없는 물건이지만 가정에서는 잘 손질하면 먹는 데는 문제가 없는 물건이라고 했다.

여행을 갔다가 차가 몹시 막혀 이슥한 저녁에 집에 도착한 적이 있다. 식당도 문을 닫을 시간이고 밥을 해서 먹기에는 너무 지쳐서 문을 닫기 직전인 마트를 갔다. 식품매대가 썰렁하게 비어 있었지만 몇 가지 남은 음식은 평소 가격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팔고 있었다. 이런 특성을 알고 있는 자취생이나 외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분주히 돌아다니며 먹거리를 고르고 있었다. 나도 그들과 함께 빵을 아주 싸게 사서 저녁을 대신했지만 먹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유통기한을 넘긴 물건은 외관으로 문제가 없다고 해도 마트에서는 전량 폐기하거나 푸드뱅크 같은 자선단체에 기부 한다고 한다. 매몰 비용이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다면 그 한계 시간을 유통기한으로 정해서 사고나 피해를 예방하자는 것이다

 

늦은 시간에 사 온 떡을 먹으며 정년퇴직을 한 우리도 유통기한이 지난 사람이라고 말하자 아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환갑을 넘겨도 여자는 일 할 곳이 많은데 남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으니 남자만 유통기한이 지난거라고 나를 노려본다.

 

사람의 유통기한을 정한다면 정년퇴직으로 봐야 할까, 나이로 봐야 할까? 나이가 들어 직장에서 정년을 맞은 남자는 직장을 구하기도 힘들고, 구한다 하더라도 허드렛일에 박봉이니 마트의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이나 다를 것이 없다. 여자도 마찬가지 이기는 하지만 남자보다는 집에서도 일터에서도 쓰임새가 많기는 하다. 아내가 여자의 유통기한이 더 길다는 이유이다

 

요즈음 남자, 청년들은 번듯한 직장을 구하기도 힘들고, 직장을 잡아도 결혼하기는 더욱 힘들고, 그렇게 살다가 정년퇴직을 하면 바로 유통기한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이래 저래 숫컷들의 수난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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