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쥐를 잡는 법

재정이 할아버지 2017. 12. 21. 08:02

아들이 손자에게 보여 주려고 햄스터를 사 왔다. 햄스터를 보자 아내가 왜 쥐를 사 왔느냐고 질겁을 한다. 손자도 햄스터를 보더니 가지고 놀기는커녕 무서워서 도망을 친다. 애완동물이라고는 하지만 아내 말대로 햄스터는 쥐다.

 

직장에 다닐 때 쥐 한 마리를 잡고 큰 상을 받았었다.

 

IMF 때라 조직 구조조정으로 한참 어수선했다. 내가 있던 조직도 없어져서 다른 부서의 창고건물을 개조해서 사무실로 만들고 거기서 근무를 했다. 오랫동안 출장을 갔다가 와보니 사무실이 쥐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창고건물을 개조했으니 벽이고 지붕이고 허술한 곳이 많아서 사무실에 쥐가 들어왔던 모양이다. 사무실에는 쥐 덫이 놓여 있었고 아침마다 쥐를 못 잡는다고 까칠한 실장이 젊은 직원들을 심하게 나무랐다. 낮에는 쥐가 보이지 않지만 모두 퇴근을 하고 난 후에 하필이면 실장 책상 밑에 지저분한 것을 물어다 놓아서 짜증을 내는 것이었다. 직원들은 퇴근을 하면서 쥐 덫에 쥐가 먹을 만한 멸치, 오징어, 심지어는 삼겹살까지 구워서 미끼로 썼지만 쥐는 잡히지 않고 애를 태웠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실장 책상 밑을 살펴보았다. 쥐가 종이를 물어와서 잘게 잘라 수북이 쌓여 있었고 그중에서도 직원들이 먹고 버린 봉지 커피 껍질이 많았다. 사무실에 먹을 것이 없으니 봉지 커피 껍질을 물어다 놓고 커피믹스 가루를 핥아먹는 것 같았다. 그날 저녁 퇴근을 하면서 봉지 커피 껍질이 들어 있는 사무실 쓰레기통을 모두 비우고 쥐덫 미끼로 봉지 커피 껍질을 달았다. 직원들은 모두 쓸데없는 짓이라고 나를 비웃었다

 

다음 날 아침 쥐덫에는 그동안 잡히지 않아서 애를 태우던 쥐가 잡혀 있었다. 실장이 어떻게 봉지 커피 껍질로 쥐를 잡았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쥐를 잡으려면 쥐가 좋아하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것이 봉지 커피 껍질이라 미끼로 썼다고 말하자 소장이 무릎을 쳤다. 실장은 그 내용을 보고서로 만들어 상부에 보고했다. 별것 아닌 일이 전국에 화제가 되었고 고객관리 사례로 채택되어 큰 상을 받은 것이다.

 

손자를 돌보려면 손자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야 한다. 아내에게 사랑을 받으려면 아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야 한다. 친구들과 재미있게 지내려면 친구가 좋아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나도 같이 좋아하고 즐기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

 

내가 좋으니 너도 좋아할 것이라는 착각이 문제를 키운다. 손자가 사달라고 졸랐다면 좋은 일인데 아들이 제가 좋아하는 햄스터를 사 왔으니 그것이 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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