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이발

재정이 할아버지 2018. 1. 20. 18:15

이발을 했다

남자이니 이발을 하려면 당연히 이발소로 가야 하는데 우리 마을에는 이발소가 없다

없는 것이 아니라 있기는 한데 뒷골목 구석진 곳에 있고 음습한 분위기라 경로당 할아버지들 외에는 가지를 않는다

나도 이발소를 한번 가보고는 70년대 분위기라 다시는 가지 않았다


내가 이발을 하는 곳은 남성 전용 헤어샾이다

미용사도 여자이고 이발 기구도 미장원용이고 머리를 깎는 방법도 이발소와는 전혀 다르다

면도기처럼 생긴 이발 기구로 밑을 쳐서 올리고 윗머리는 가위로 몇 번 잘라내 그만이다

면도도 없고, 머리도 감겨주지 않는다


남성 전용 헤어샾이라고 해도 중, 고등학교 여학생도 많이 온다

이발이나 옷은 중성화되어서 굳이 남녀구분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도 이발소는 세상의 변화에 둔감하여 70년대 방식을 고수하고 있으니 할아버지들만 이용하는 곳이 되었다

기껏 변화에 따른다는 이발소는 변태영업으로 보통 사람들은 얼씬도 하지 않는 적색 지대다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개성이 강해서 자기만의 스타일이라는 이상한 모양 머리로 깎아 달라고 해서 미용사가 곤혹스럽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도 예전 같으면 깎다만 머리, 벌레가 파먹은 것 같은 머리를 하고 다니는 대학생들이 많이 보인다


나의 이발 스타일은 장교 머리다

군부대 지역이라 군인들이 많아서 장교처럼 머리를 깎아 달라고 하면 시비없이 빠르고 편하게 이발을 해준다


이발을 하면서 왜 남자는 머리는 짧게 깎고, 여자는 길게 기르는지 궁금했었다

남자가 머리를 짧게 깎기 시작한 것은 오래전 일이 아니다

남자들 머리가 짧아진 것은 현대적 군대 문화라고 한다

총을 쏘고 비행기가 폭격하는 현대전에서 군인들이 철모를 썼고, 철모를 쓰기 위해서 머리를 짧게 깎기 시작했다는 것이 남자 머리가 짧아진 이유다

역사를 거슬러 알아볼 것도 없이 개화기 전만 해도 남자들은 상투를 틀었으니 머리를 짧게 깎기 시작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머리를 깎는다는 것은 일신상의 큰 변화를 의미한다

남자는 군대를 갈 때도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도 머리 깎고, 시위현장에서 결연한 의지의 표현도 삭발이다

여자도 실연하거나 마음에 변화가 생기면 머리부터  짧게 자른다고 한다


나는 머리에 쌍가마가 있어서 가르마를 하지 못한다

머리 손질이 어려워 직장에서 퇴직하자마자 꽁지머리를 하기로 마음먹고 몇 달간 머리를 길렀었다

그러다가 다시 직장을 다니게 되어 기르던 머리를 잘랐다

몇 년이 지나고 다시 꽁지머리를 시작하려고 하니 그사이에 앞머리가 훤해져서 그마저도 틀렸다

이제는 바람에 날려도 머리가 까치집이 안 되는 것은 빡빡 머리 밖에 없다

남자는 머리를 기를까 자를까만 결정하면 되는데 긴 머리를 어떻게 모양을 내야 할지 고민하는 여자로 안 태어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생원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자는 짐승, 여자는 천사  (0) 2018.02.02
쓸데없는 선물  (0) 2018.01.29
조류독감  (0) 2018.01.16
탁구공  (0) 2018.01.15
평창의 추억  (0) 2018.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