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쓸데없는 선물

재정이 할아버지 2018. 1. 29. 17:55

젊은이들 생각과 행동은 기발하다. 육체와 정신은 성장했어도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해서 기성세대에 억압되는 처지에 날을 세우고 반발을 하는 일들이 그렇다. 우리 세대에서는 이유 없는 반항이라고 해서 한때의 객기 정도로 여겼던 일들이다

 

요즈음 청소년들은 사회 관계망 서비스의 발달로 기성세대에 대한 반발도 조직화하고 빠르게 번지는 특성이 있다.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내 집 마련, 희망, 꿈을 포기했다는 서글픈 7포 세대 이야기이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자식의 문제들이니 어른 된 입장에서도 우스갯소리라고 귓전에 흘려버릴 이야기는 분명 아니다

 

7포 세대는 흙수저, 헬조선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작은 사치라는 행동 양식으로도 나타났다. 작은 사치는 최저임금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현실도피 표현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혼자 힘으로 부자가 되기는 어렵고, 명품 옷이나 가방을 사기도 틀렸으니 내가 좋아하고 갖고 싶은 소품이라도 푼돈으로 사서 마음껏 쓰자는 반항이다. 만 원이나 몇 천 원짜리 장난감, 화장품 같은 작은 물건을 사서 모으며 행복을 느껴 보자는 심리적 사치다

 

작은 사치와 함께 청소년들에게는 쓸데없는 것 선물하기가 유행이라고 한다. 고마운 분이나 친구에게 마음을 전하는 물건을 사주는 것이 선물이다. 청소년들 사이에 유행하는 쓸데없는 선물은 받는 사람이 아무 곳에도 쓸 수 없는 선물이 좋은 선물이라고 하니 헛웃음이 먼저 나오는 발상이다

 

쓸데없는 선물 중에는 전(前) 대통령 자서전, 김정은 초상화, 짚신, 벼루, 비디오테이프, 정당 입당 원서 같은 것들이 인기라고 한다. 금액도 오천 원은 넘고 만 원은 넘지 않는 정도라야 한다는 묵시적 약속도 있는 모양이다. 마음에 드는 선물을 사기에는 경제적으로 부담이 큰 현실에서 웃음이라도 선사한다는 역발상 선택이다

 

쓸데없는 선물은 어른들의 입장에서도 공감이 간다. 명절이 다가오면 일가친척과 고마운 이웃에게 마음을 담은 선물을 하기가 쉽지 않다. 비싸고 좋은 물건은 얼마든지 많지만, 주머니 사정과 타협해서 좋고 실용적인 물건을 고르기는 쉽지 않다

 

청소년들의 쓸데없는 물건 선물하기를 접하면서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하는 나도 이번 명절에는 쓸데없는 선물을 해볼까 생각해 보았다. 청소년들이야 돈이 없어서 시작한 일이지만 어른이 된 나는 세계에서 제일 부자인 만수르라고 생각하고 고가의 쓸데없는 선물을 골라 보았다

 

여행을 좋아하는 형에게는 747점보 여객기를 선물하자. 세상에 불만이 많은 친구에게는 핵폭탄을 선물하자. 골동품을 좋아하는 직장동료에게는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출토한 미라를 선물하자. 동물을 좋아하는 조카에게는 호랑이를 선물하자

 

선물을 고맙게 받을지, 주체하기 어려워 사양할지는 모르지만 상상만으로도 재미있다. 세상에는 돈이 없어서 못 사는 선물도 많지만, 받아도 감당할 수 없어서 쓸데없는 선물도 있다

'생원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보  (0) 2018.02.05
남자는 짐승, 여자는 천사  (0) 2018.02.02
이발  (0) 2018.01.20
조류독감  (0) 2018.01.16
탁구공  (0) 2018.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