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자 재정이

미운 네살

재정이 할아버지 2018. 4. 21. 21:23



재정이는 네살이다

아직 세돌도 지나지 않았지만 한국 나이 셈법이 그러니 네살이라고 한다

엄마들은 아기가 네살 나이쯤 되면 잠 잘 때는 천사, 눈 뜨면 악마라고 부른다

못가는 곳이 없고, 못하는 짓이 없고, 하지 말라면 더하는 시기라서 그렇다


나도 재정이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동생 때문에 우리 집에 유배를 온 주제에 주인행세를 한다

손에 닿는 것은 모두 끌어내려 집어 던지고

가전제품 스위치는 모두 눌러보고

TV나 컴퓨터도 제 마음에 들지 않는 프로는 켜지를 못한다

상전 모시듯 하루 종일 따라 다니며 시중을 들라 한다

잠을 잘 때 마저도 내 옷소매에 손을 넣어 움켜잡고서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한다

 

목욕도 바께쓰(양동이의 속된 말)에 들어가 한다

넓은 욕조를 두고 좁은 바께쓰에 비비고 들어간다 

하지 말라고 하면 아무데나 드러누워 허락할 때 까지 울어대니 도리가 없다


보석도 처음에는 잡석에 섞인 이상한 돌이었다

원석을 찾아내는 광부의 눈썰미와

세공사의 정교한 손길이 있어야 보석이 된다

미움도 고움도 정(情)이니 이 또한 지나가는 과정이리라

보석을 다듬는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시간이라고 하자



네살이 되니 온갖 참예는 다 한다

들어오나 나가나 눈에 보이는 것은 허투로 지나치는 것이 없다

열번을 묻고, 열번을 대답해도 또 묻는다

어린이 집에 갈 때는 저 보다 더 큰 가방을 메는 것이 규칙이다

한번 머릿속에 각인된 규칙은 어기는 법이 없다

어린이 집에서도 제 물건을 가방에 잘 챙기는 살림꾼 아이로 소문이 났다


어린이 집에 가는 길에도 세 걸음을 못가서 주저 앉아 풀이며, 꽃이며, 벌레들을 참견한다  




우리 마을 연구단지 가로수는 꽃나무다

이른 봄에는 벚꽃이 터널을 이룬다

멀리서도 구경을 올 만큼 유명하다

재정이도 할머니를 따라 꽃구경을 나왔다 

 



제발로 걸어서는 처음 만나는 개나리다



재정이는 꽃구경을 하지만

꽃을 보고 즐거워하는 재정이를 보는 것은 나의 구경거리다



연구단지 운동장에는 재정이가 좋아하는 자율주행차가 있다

재정이가 운전석에 앉으면 가고 싶은 곳으로 알아서 가는 자동차다

핸들도 돌리고, 기어작동도 하면서 재정이는 베스트 드라이버 흉내를 낸다

자율주행차의 비밀은 내 손에 쥔 리모컨이다



어린이 집에서 돌아오면 학교 운동장에 나가 킥보드를 탄다

겨우내 방안에서 연습을 하더니

이제는 운동장에서도 제법 잘 탄다



공원에서는 시소를 타야한다



그네는 무서워서 혼자 타지 못 한다

옆에서 잡아 주어도 아직은 불안하다



잉어가 재정이를 잡았다


재정이가 아버지를 따라 실내 낚시터에 가서

미끼도 없는 빈 낚시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빈 낚싯대를 잡은 재정이가 잉어에 끌려갔다

아버지가 달려들어 재정이와 낚싯대를 수습하고 보니 커다란 잉어가 걸려나왔다



잉어가 어린아이라고 만만히 보고 달려들었다가 잡힌 것이다 

큰 잉어다



재민이는 재정이 그늘에 가려 없는 듯 있고, 있는 듯 없다

60여 일 지나니 제법 똘망똘망하다

눈도 마주치고 웃기도 한다



잘 먹고, 잘 자라니 고맙고 대견하다

가족들이 재정이 파와

재민이 파로 인기와 지지도가 갈리기 시작했다

 


격리되어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재정이의 동생 사랑도 각별하다

너무 격열히 사랑해서 탈이다

격열한 재정이 사랑에 불안한 재민이 표정이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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