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로메인 상추

재정이 할아버지 2018. 4. 24. 15:09

로메인

로메인 상추는 우리나라 청상추와 크게 다르지 않다.  토종 담배상추와 같은 모양이다 


유럽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로메인 상추를 먹게 된다

서양 요리 전채인 샐러드의 재료이고, 샌드위치나 햄버거에 끼워 먹기도 하기 때문이다

로메인 상추라고 특별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재배를 하고 있다

청상추 중에서 주름이 적고 매끈한 상추다

로마 사람들이 즐겨 먹는다고 해서 로메인 상추라고 부른다는데 줄리어스 시저도 즐겨 먹었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유럽에서 로메인 상추를 먹고 배탈이 나서 사람이 죽고, 고통을 받더니 이번에는 미국에서도 비슷한 배탈 사고가 났다

급기야는 미국에서 팔거나 먹지 말도록 로메인 상추 주의보까지 내려졌다고 한다

일정한 지역에서 생산된 로메인 상추에서 대장균이 검출되었고 그 대장균이 배탈의 원인이라는 것은 밝혀졌지만 더 이상의 진상은 규명하기가 힘든 모양이다

세상의 변화가 무쌍하여 기존의 과학적 지식으로는 알 수 없는 변종의 병원체나 원인 물질이 있다면 그것은 큰 제앙이 될 수 있다


채소 농사는 다른 농사보다 청정을 필수조건으로 한다

생으로 먹는 샐러드나 쌈 채소일 경우는 더욱 그렇다

열이나 소금으로 가공하지 않고 날로 먹는 채소는 조심해야 할 것들이 많다


우리나라도 웰빙 시대를 맞아 유기농 재배 신선채소 인기가 높다

유기농 재배는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다는 전제로 생산하는 농산물이다

농사를 지어 본 사람이면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농사를 짓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안다

채소가 자라지도 않고 벌레와 병균으로부터 작물을 지켜 내기가 정말 어렵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유기농 채소는 깨끗하다는 선입관은 버려야 한다

일반 채소보다 더욱 세심히 씻고 다듬어서 먹어야 한다

토양과 퇴비에서 나오는 벌레나 세균은 더 많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 마을에서 채독(菜毒)이라는 병에 걸려 고생하는 사람들을 간혹 볼 수 있었다

당시에는 비료와 농약이 귀했고, 있어도 너무 비싸서 농사에는 거의 쓰지 못했다

비료는 가축분뇨나 인분을 썼고 농약은 독초를 사용하였다

인분만 빼면 지금의 유기농법과 같은 방법이다

채독은 덜 삭은 인분을 뿌린 밭에서 생산한 채소를 생으로 먹었을 때 채소에 붙어있던 기생충이 몸속으로 들어가서 생기는 병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흡혈 기생충인 십이지장충으로 극심한 빈혈을 일으켜 치료가 어려운 난치병이었다

선진국인 미국이나 유럽에서 채소밭에 인분을 사용했을 리는 없지만, 다른 이유의 채독일 가능성은 높다

토양과 퇴비에서 알 수 없는 기생충이나 세균에 오염되었을 가능성은 있기 때문이다

사용을 해도 며칠 지나거나 물에 씻으면 독성이 낮아지는 저독성 농약을 이용한 일반 농사가 채독 예방에는 나쁘지는 않다는 조심스러운 대안도 생각해 본다


얼마 전에 로메인 상추인 줄도 모르고 로메인 상추를 맛있게 먹었다

고대에서부터 로메인 상추를 즐겨 먹었다는 로마인이 살았던 로마에서 일이다

물가가 비싼 유럽에 패키지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여행지의 부실한 식사에 공감할 것이다

밤낮이 바뀐 시차로 입맛도 없는데, 가는 식당마다 헛배만 불리는 마른 빵과 굵은 국수를 토마토케첩에  비벼주는  파스타만 내놓았다

요즈음 동네 골목길에 생기는 이태리 식당 수준의 음식도 구경을 못 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배를 곯으며 여행하는 중에 로마에 도착했고 그날 저녁은 삼겹살을 먹는 날이었다

도시 외곽의 허름한 식당에는 이미 다른 팀 한국 사람들로 꽉 차 있었고 삼겹살 익는 기름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예약된 자리에 앉자 식탁에는 쌈장과 마늘, 그리고 큰 바구니에 담긴 상추가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굶주림에서 해방된 들뜬 얼굴로 삼겹살을 걸신들린 것처럼 먹기 시작했다

한국 사람들 구미에는 치즈나 올리브유보다는 된장과 상추가 맞는가 보다 

삼겹살을 맛있게 먹기는 하는 데 문제는 상추였다

배추 겉잎과 같은 크기의 거대 상추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상추는 한 닢에 고기 한 점을 싸면 알맞은 크기로 먹기에 좋다

로마 상추는 크기가 커서 아무리 입이 큰 사람도 두세 번 잘라서 고기를 싸도 입에 넣기에 컸다

씹는 소리도 유난히 아삭거려서 식당 전체가 상추 씹는 소리로 요란했다

맛도 좋았지만, 누구도 이것이 무슨 상추인지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먹기에만 바빴던 식사였다

한국 토종보다 모든 동식물이 큰 유럽이니 상추도 크다고만 생각을 했다


로메인 상추 기사를 보고 혹시나 해서 알아보니 로마에서 내가 먹은 것이 바로 로메인 상추였다

마누라에게 기사를 보여주며 로메인 상추 이야기를 했다

마누라는 머나먼 남의 나라 이야기로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기우라고 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을 이유가 없으니 배탈이 나도 다시 로마에 가서 그 로메인 상추를 먹고 싶다고 했다

마누라 말을 들어보니 그 말이 맞다

갑자기 나도 로메인 상추가 먹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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