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착하게 살기

재정이 할아버지 2018. 2. 8. 20:04

착하게 살라는 말을 쉽게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선천적으로 착하게 태어나거나 성직자처럼 수양한 사람이 아니면 착하게 살자는 다짐만으로 착해지지는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한 번쯤은 경제에 대해서 관심을 끌게 되고 공부도 하게 된다

경제라는 것이 사람에게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 분배, 소비하는 모든 활동을 이르는 말이기에 생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경제 교과서의 서두는 이기심으로부터 시작한다

경제활동을 이끄는 동력이 이기심이기 때문이다

생산하고, 분배하고, 소비하는 것 일체의 행위는 내게 득이 되면 하고, 득이 되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

나의 이기심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내가 선이라고 생각하는 경제활동이 상대방에게도 선이라는 생각을 버리라고 한다

경제활동에서 성공한 부자나 출세한 사람들은 그래서 이기적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착한 사람들의 착한 일은 반경제적인 이타심에서 출발한다

내 집 마당을 청소하는 것은 경제적이고 공원을 청소하는 것은 착한 일이다

내 손자에게 용돈을 주는 것은 경제적이고 보육원 아이에게 용돈을 주는 것은 착한 일이다

집안 어른에게 선물하는 것은 경제적이고 경로당에 선물하는 것은 착한 일이다  

경제적인 일은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고 착한 일은 남을 위해서 하는 일이다


나는 이제껏 경제적으로 살았고 좋은 일은 해보지 못했다

나 살기도 버겁다는 핑계다

사랑도 받아 본 사람이 사랑을 나눈다

우연히 곤경에 처한 나를 도와준 사람이 있었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그 사람에게 기회가 되면 당신처럼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우며 살겠다는 약속을 했다


지난해에 마을 산악회에서 거제도에 있는 대금산으로 등산을 갔다

높지는 않아도 산과 바다 경치가 무척 아름다운 산이었다

구비구비 바다가 내려다보이고 섬이기 때문에 아무 곳으로 내려가도 바다이어서 지도를 보지 않고 방심을 한 것이 사달이 났다

중간에서 점심을 먹다 보니 일행과 헤어졌다

점심을 먹고 사람들이 내려가는 큰길을 따라 산을 내려왔는데 내려와서 보니 목적지와는 반대편이었다

다시 산으로 올라갈 수도 없고, 버스나 택시도 없었다

걸어서 가려면 서너 시간을 가야 한다는데 일행과 약속한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택시를 부른다 한들 거제 시내에서 오는 시간이 일행과 만나기로 한 시간을 훨씬 지나서였다

마누라와 내가 당황해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휴게소에서 쉬고 있던 노부부가 내게로 왔다

우리의 약속 장소를 묻더니 자기들이 가는 곳과는 반대 방향이지만 급하다니 태워다 주겠다고 했다

명함을 달라고 해도 웃기만 하고,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 커피를 대접하겠다고 해도 사양하고 그냥 가버렸다

마누라와 나를 내려놓고 돌아가는 자동차를 바라보며 기회가 되면 나도 당신처럼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우며 살겠다고 약속을 했다


나도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도와서 착한 일을 할 기회가 왔다

일이 있어 고향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도로를 혼자 걸어가는 젊은이를 보았다

날씨는  매섭게 춥고, 인적이 드문 길을 혼자 걸어가는 것이 딱 보여서 차를 세웠다

행선지를 말하고 가는 곳까지 같이 가자고 했더니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차에 올라탔다

행색도 초췌하고 피곤해 보여서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더니 울산까지 걸어서 간다는 것이다

조선소에서 근무하다가 회사가 문을 닫아 실직하고 직장을 구하러 다니는 중이라고 했다

직장을 구하러 다니기는 하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아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돈이 없어서 걸어서 가는 중이라고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착한 일을 하는 것이라 대전에서 울산까지 버스비 2만 원을 줄 테니 버스를 타고 가라고 했다

버스비를 준다고 하자 젊은이는 온종일 밥도 굶었으니 밥값으로 만원만 더 달라고 했다

신호대기로 차가 섰을때 지갑에서 3만 원을  꺼내 주었다

버스 터미널에 데려다주려고 가고 있는데 젊은이가 기왕에 도움을 주시려면 5만 원만 더 줄 수 없느냐고 말했다

젊은이가 5만 원을 더 달라고 하는 순간 갑자기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지금까지 젊은이가 한 말도 의심이 들었다

나를 바라보는 젊은이의 얼굴이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시내버스 정류장에 차를 세우고 젊은이를 내리라고 했다

젊은이는 5만 원을 더 달라면서 차에서 내리지 않고 버텼다

할 수 없이 내가 내려서 젊은이를 끌어 내렸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왔다


지금 생각해도 무섭다

착한 일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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