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야구의 역설(逆說)

재정이 할아버지 2018. 6. 11. 06:02

나는 한화 이글스 야구 팬이다

빙그레 이글스 창단 때부터 한화 이글스로 이름이 바뀐 지금까지 변함없이 응원하고 있다

한화 이글스를 응원하는 이유는 한화가 충청도를 연고로 하는 팀이고 나는 충청도 토박이이기 때문이다

한화 이글스는 야구를 잘하는 팀은 아니지만 화젯거리는 많은 팀이다 

한국 시리즈 우승은 딱 한 번 했고 꼴찌는 무려 여섯 번이나 했다

어쩌다가 99년도에 한국 시리즈를 우승한 이후 팀 전력이 하향곡선을 그리나 싶더니 꼴찌 팀이 되었다

감독을 바꿔보고 잘하는 선수를 데려와도 성적은 언 발에 오줌 누기이고 항상 꼴찌다

지는 것이 익숙해서 삿갓을 쓰고 목탁을 두드리며 경기를 지켜보는 관객이 등장하고 한화 팬은 보살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한때는 후원 기업이 화약회사이고 즐비한 홈런타자가 있어서 다이너마이트 팀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한화 이글스를 마리한화라고 부른다

수년간 꼴찌를 하면서도 근성 있고 재미있는 야구를 해서 관중은 늘 만원이었기 때문이다

초반에 잘하다가 후반에 어이없이 무너지고, 포기했던 경기가 막판에 뒤집히는 한화 야구는 9회 말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라는 중독성 재미가 있어서 얻은 별명이다


금년에도 프로 야구가 개막되자 한화는 연전연패 꼴찌로 시작했다

개막전 야구 전문가들의 예상도 평가가 무의미한 당연한 꼴찌였다

초보 감독은 선수보강도 하지 못하고 패잔병 같은 기존선수들을 추스려 몇 년 뒤를 준비하는 듯 보였다


나는 어려서부터 야구를 좋아했다

잘하는 운동이 없었지만, 골목 야구에서만은 군계일학이었다

투수로 나서도 잘하고, 수비도 만점이고, 배트를 휘두르면 안타였다 

만화를 보고 규칙을 배웠고, 나무를 깎아서 배트를 만들고, 종이를 접어서 글로브를 만들어 야구를 했다

야구를 하고 싶어서 친구들을 꼬드겨 골목에서 야구연습을 했고 이웃 마을 아이들과 시합을 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야구 연습이니 열심히 했고 많이 해서 실력이 좋았던 것이다


야구는 재미로 즐기기에는 위험한 경기다

모든 운동선수가 시합 중에 부상을 당하지만 야구만큼 치명적이지는 않다

타자가 타석에 들어설 때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갑옷 같은 보호장비를 달고 나온다

보호장비를 했어도 투수가 던진 공이나 배트에 튕긴 공을 맞으면 총 맞은 것 처럼 쓰러진다

공에 맞는 것도 훈련이고 수없이 맞아보아서 이골이 났으니 다시 일어나 경기에 임하기는 하지만 그 고통은 맞아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이 힘들다

시속 150km나 되는 빠른 공을 정교하게 던지는 투수나 그 공을 원하는 방향으로 쳐내는 타자나 어려서부터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야구의 규칙은 까다롭다

까다롭지만, 규칙을 모르면 야구선수가 될 수 없고 구경하는 사람도 재미를 느낄 수 없다

야구경기 중계를 보면 선수들이 어슬렁거리며 서 있는 모습이 많아 쉬운 경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공이 날아오르면 어슬렁거리던 선수들이 빠르고 격렬하게 요동을 친다

불과 몇 초 순간에 모든 선수가 정밀한 기계처럼 움직이며 수비하고 공격을 한다

규칙에 따라 수 없이 훈련하고 연습해서 선수들이 기계부품처럼 움직이는 것이다  


여름이 되면서 한화 야구가 미쳤다

만년 꼴찌팀이 이기고 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고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상위권으로 도약을 했고 모든 팀이 두려워하는 강팀이 되었다

모두 설마설마하다가 이제는 놀라고 있다

전문가들도 한화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해서 여러가지 견해를 내놓았다

견해의 핵심은 감독이 선수를 믿는다는 것이다

전임감독은 승부욕이 강해서 경기와 선수를 직접 철저히 관리하는 감독이었다

선수들이 지쳐서 쓰러질 때 까지 수비 연습을 시키고 손바닥에 피멍이 들도록 타격연습을 해야 했다

경기에 임하면 선수 일거수일투족을 지휘했다

선수를 혹독하게 훈련시키고  정교한 작전을 구사하여 좋은 성적을 거둔 명장 감독이었다

새로 부임한 감독은 선수를 믿고 경기를 맡겼다 


한화 감독은 선수들이 기본 훈련을 마치면 퇴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수도 편히 쉬어야 다음 경기에서 마음껏 기량을 발휘한다는 지론이다

선수가 연습에서 지쳐버리면 정작 경기에서는 힘도 쓰지 못하고 몸이 무거워 실수하고 부상을 당한다는 것이다

선수 기용도 뜻밖이다

노련한 고참선수 보다 신인 선수들을 중용한다    


"야구는 몰라요, 야구도 인생도 끝나기 전에는 몰라요"라는 유행어를 만든 야구 해설가가 있었다

불행하게 생을 마감한 그 해설가의 말처럼 야구도 인생도 끝나야 아는가 보다

혹독한 훈련과 지독한 연습으로 특출한 선수가 태어나고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이 스포츠의 정설이다

만년 꼴찌 한화 이글스는 선수가 바뀌지 않았다

감독만 바뀌었다

바뀐 감독은 선수를 믿고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었다

만년 꼴찌팀이 이기는 이유의 전부이다


훈련을 줄이고, 선수에게 경기를 맏기니 이긴다는 말은 야구의 역설이다

자식에게 공부하라고 닦달하는 부모들이 알아 둘 일이다

실적을 올리라고 직원들을 들볶는 기업주들이 참고할 일이다

내가 아니면 나라가 망한다고 설치는 정치인들이 배워둘 교훈이다

한화는 오늘도 이겼다

주전들이 부상으로 빠졌어도 패잔병같이 무기력하던 어린 선수들이 매일 매일 영웅으로 거듭나며 이기고 있다

감독은 시합 내내 팔짱을 끼고 수염만 쓰다듬고 있었다

선수들 스스로 9회 말에 역전해서 재미있게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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