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회화나무

재정이 할아버지 2018. 8. 12. 20:02



중국으로 산업시찰을 다녀온 기관장이 관내의 가로수를 아카시아로 바꾸면 어떨지 의견을 물어왔다

중국에는 도로에 아카시아가 심겨있고 아름답고 훌륭한 가로수라는 것이다

가로수를 담당하는 부서는 뚱딴지같은 아카시아 가로수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산과 들에서도 못 없애 난리인 천덕꾸러기 나무 아카시아를 가로수로 심자는 발상이 무엇인지

기관장의 황당한 저의를 몰라서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봤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헛웃음이 전부였다


누구에게 물어도 아카시아를 가로수로 쓴다는 것에 동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도대체 중국에서 무엇을 보고 왔기에 아카시아를 가로수로 심자고 하는 것인지

산업시찰을 주관한 여행사에 여행지의 가로수 정보를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얼마 후 여행사에서 회화나무라고 알려주었다

회화나무를 아는 사람이 없어서 여기저기 물어서 알아보니

아카시아와 닮은 나무였다

가시가 없다는 것과 꽃 피는 시기가 아카시아는 5월, 회화나무는 8월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지만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지 않으면 구별하기가 쉽지 않은 나무였다


아주 오래전의 일이지만 내가 회화나무를 알게 된 계기이다



우리 주변에는 의외로 가로수나 공원의 조경수로 회화나무가 많지만

대부분 아카시아라고 생각할 뿐 회화나무를 아는 사람이 드물다

회화나무라는 이름조차 생소하다

우리나라와 중국이 원산지이지만 아무 곳에나 심지 못하는 나무이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회화나무는 한자로는 괴목(槐木)이고 영어로는 Chinese Scholar Tree다

우리나라에서는 행운을 주는 나무라고 하고

중국에서는 출세의 나무

서양에서는 학자의 나무라고 부른다

의미가 상서롭고 품격이 범상치 않은 나무다



시골에서 흔하게 볼 수 없던 이유도

고관대작이나 공을 세운 사람에게 임금이 하사하는 나무이어서

아무나 아무 곳에 심으면 벌을 받는 나무이었기 때문이다

세도가의 표상으로 심는 나무이니

서민들은 회화나무를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회화나무는 유별나게 생긴 것도 아니고 특별하지도 않다

흔히 보는 아카시아를 상상하면 딱 맞다

꽃, 잎, 줄기 모두 화려하지도 않고 담백한 나무다

자라는 모양도 제멋대로다


예전에는 아무나 심을 수 없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전국의 도로나 공원에 많이 심겨있다

충청도 지방에서는 호야나무라는 사투리로 불리기도 하는데

해미읍성에 있는 회화나무는 천주교 신자를 고문하고 처형한 나무여서 성지순례의 핵심이다

일장춘몽도 회화나무 밑에서 낮잠을 자다가 꿈을 꾼 이야기다

느티나무나 은행나무처럼 오래 살고 크게 자라는 나무이기 때문에

지방마다 보호수로 지정된 것이 많다    


                            


조경수의 3대 조건이 꽃, 잎, 줄기이지만 

어느것 하나도 내세울 것이 없는 회화나무가 학자의 상징 나무인 까닭은 따로 있다

8월에 피는 수수한 노란 꽃은 노랑색 염료로 쓰이고

꽃과 껍질, 열매는 만병통치 약재로 쓰인다

가지를 잘라 만든 지팡이는 민간요법에서 중풍을 낳게 한다고 한다

나뭇가지 모양이 천방지축으로 삐지고 멋대로 굽어서 자라지만

그것을 학자의 지조이고 신념으로 보았다

학자의 논리는 백성의 아픔을 치료하는 약재가 되어야 하고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 자기 뜻을 굽히지 않는 학자의 기개를 의미한다고 본 것이다

집안에 회화나무를 심고 잘 자라면 학자가 나고 가문이 번성하지만

회화나무가 말라 죽으면 가문이 기운다고 했다


올 여름은 초입부터 폭염이 시작되었고 입추가 지난 지금도 끝나지 않고 진행 중이다

무더운 여름에는 소나기라도 한줄기 하건만

소나기 조차 없는 잔인한 여름이다

더운 것은 참으면 되지만

저수지가 말라서 논밭의 곡식이 가뭄으로 타 들어 가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다

산과 공원의 나무도 빨갛게 타들어 간다

혹시 집 앞의 가로수나 공원에

회화나무가 있는지 살펴보자

있다면 회화나무는 말라 죽지 않도록 물을 주어야 한다

회화나무가 말라 죽어서 나라의 운명이 쇠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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