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謹賀新年

재정이 할아버지 2018. 12. 31. 17:12

하루가 지나면 새해다

묵은해의 마지막 남은 하루, 조용히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새해 첫날 1월 1일은 애매한 날이다

관공서가 쉬는 공휴일이지만 명절도 아니고 기념일도 아니다

한 해를 시작하는 첫날일 뿐이다

새로 시작하는 한해를 보람있게 살자고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 날이라고 보면 무방할 것 같다


며칠 전 연하장을 받았다

謹賀新年

삼가 새해를 축하한다는 인사말이 적힌 카드다

직장 퇴직자 모임에서 전체 회원들에게 보내는 연하장이다

올해도 딱 한 장, 해마다 유일하게 받아보는 연하장이다

회원 평균 연령이 80이 가까우니 나이를 더하는 새해에 축하 인사 나누기도 머쓱하다

예전에 하던 습관대로 연하장이나 돌리는 것이다   


이제는 지나간 추억이지만 과거에는 연말에 카드를 주고받는 일이 큰일이었다

청소년기에는 크리스마스 카드,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부터는  연하장을 주고 받았다

누구에게 보낼 것인가를 정하고  문방구에서 카드를 사고, 카드에 무슨 인사말을 적어야 할지 고민한다

보통 100장도 넘게 카드를 샀다

한장 한장 축하 문구를 적고  우체국에서 부치는 일까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유행이었고 못 받으면 서운해하니 담 하나 사이의 이웃집에도 카드를 보내던 때다   

성장기 청장년 시절이니 새해가 온다는 것은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된다는 것이어서 지인들에게 카드로 축하를 받으면 기뻤다 


연하장이 갑자기 사라진 것은 허례허식이라고 지목되어 직장인 연하장 주고받기가 금지되면서 부터다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전자메일이 연하장을 대신하게 된 것도 중요한 이유다

휴대전화가 나오자 연하장은 문자메일로 진화하고 발전했다

근하신년, 송구영신이라는 내용에는 변함이 없고 주고받는 방법만 바뀌었다

은퇴를 하고 사회활동을 접은 지금은 연말이 되어도 연하장 문자조차 간간히 올 뿐이다 


일본은 연말에 연하장을 주고받는 문화가 아직도 활발히 존속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 일본에도 전후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서 슈카스(終活)라는 문화가 생겨나서 연하장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초고령 사회인 일본에서 남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노인이 자기 죽음을 스스로 준비하는 활동을 슈카스라고 한다

어느 노인이 친구에게 보낸 슈카스 연하장 문구가 동병상련의 같은 노인들에게 공감을 불러왔다고 한다  


친구여!

이제 마지막으로 연하장을 보내네

나이가 들어 심신이 쇠약하여 연하장을 보내기도 힘이 든다네

연하장을 못 보내도 항상 친구의 건강과 행복을 마음속으로 기원하겠네 


하루 남은 묵은해를 정리하면서 연하 문자를 보낼 고마운 지인들의 이름을 적어본다

새해 인사를 무엇이라고 적어야 할지 고민이다

은퇴를 하고 여러 해가 가니 가까이 살면서도 얼굴 본지가 까마득한 지인도 여럿이다

몇 해 뒤에는 나도 슈카스 문자를 써야 할 때가 올 것이다

내가 보낸 슈카스 문자를 본 지인의 심정을 어떠할까

지인들이 보낸 슈카스 문자를 보는 내 마음은 어떨까

심정적으로는 공감이 가지만 일본과 달라서 한국인 정서에는 슈카스가 맞지 않는 문화인 것 같다


한국의 연하장 슈카스는 손이 떨려 문자를 못 쓰거나 받은 문자를 눈이 어두워 못 읽는 것이다

연말에 보내는 연하 문자는 근하신년, 송구영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는 판박이이지만 그나마도 못 보내고 못 볼 때 자연스럽게 잊힌 사람이 되는 것이다

지금 이렇게 긴 문장을 써 내려가는 나는 아직도 소년이다

이렇게 긴 문장을 여기 까지 읽으신 분은 아직도 청춘이다

기왕에 읽었으면 하단 하트 표시에 공감을 눌러 주면 덕도 쌓는 것이다   


공감을 눌러주신 분에 한해서

謹賀新年

送舊迎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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