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미꾸라지의 탄식

재정이 할아버지 2018. 12. 26. 17:19

미꾸라지가 울고 있었다

지난 밤 꿈 이야기다

왜 우느냐고 물었더니 억울해서 운다고 했다

못된 사람을 미꾸라지라고 부르는 것이 창피해서 살 수가 없다는 것이다

미꾸라지가 개울물을 흐린다고 하는데 그 말은 오해라는 것이다

미꾸라지가 사는 곳은 진흙 펄이고 원래 흐린 물이라는 것이다

흐린 물을 깨끗이 하려고 펄 속의 지저분한 유기물을 찾아 먹어서 청소하는 것이 미꾸라지의 일인데 그것을 탓하니 분하다는 것이다

청소부가 쓰레기 치우는 일을 하다 보면 옷에 오물이 묻어 냄새가 날 수 있는데 그렇다고 더러운 사람은 아니지 않으냐는 탄식이다 

미꾸라지가 개울의 청소부라서 하는 말이다   


미꾸라지는 나의 오랜 친구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나는 공부보다 놀기를 좋아했다

놀이 중에서도 냇가에 나가서 물고기 잡는 놀이를 제일 좋아했다

우리나라는 어느 곳이나 물만 고여 있으면 미꾸라지가 산다

불가사의 중 하나다

하늘에서 떨어지는지 땅속에서 솟는지는 몰라도 깊은 산 속 웅덩이나 외딴 섬 둠벙에도 미꾸라지가 산다

생긴 모양이 흉측하고 비늘 대신 미끌거리는 점액질 피부가 있어 잡기도 어렵고 비호감이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미꾸라지가 내 친구가 된 것은 아무 곳에서나 잘 살고, 냇가에 가면 언제나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꾸라지는 흐르는 물보다 고인 물, 바닥이 진흙인 곳을 좋아한다

먹이인 곤충의 유충과 유기물이 많기 때문이다

개울 바닥을 열심히  청소해서 물을 맑게 하는 이로운 생물이다

생명력이 강해서 물의 혼탁을 가리지 않고  환경변화 적응력도 뛰어나다

아가미와 장으로 호흡을 하기 때문에 가뭄으로 물이 마르거나 겨울에 추워지면 진흙 속으로 들어가 잠을 잔다

논과 수로가 미꾸라지에게는 천혜의 서식지다


내가 매일 잡아 왔지만, 어머니는 미꾸라지가 징그러워 만지기를 싫어해서 사람이 먹지는 않았다

닭이나 돼지를 먹였다

사람들이 잡지도 않고, 먹지도 않는 천덕꾸러기 물고기이었다

못 생겨서 피하고 미끄러워서 잡기도 어려운 미꾸라지는 번식력까지 왕성해서 냇가에서는 제일 흔했던 민물고기이다

그랬던 미꾸라지가 요즈음은 공장 폐수와 농약으로 오염되어 냇물에서 사라졌다

오염되지 않은 저수지에서는 배스, 블루길 같은 육식성 외래 어종들이 미꾸라지 씨를 말려서 이제는 귀한 물고기다


미꾸라지가 분을 삭이려고 하지만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생태계 파괴로 살 수 없게 된 환경은 어쩔 수 없으니 참는다고 했다

그러나 하찮은 미물도 세상에 태어났으면 존재가치가 있고 자존심도 있다는 것이다

게으른 사람의 초췌한 수염을 왜 미꾸라지 수염이라고 하는가?

연예인, 운동선수들도 수염을 기르는데 미꾸라지 수염과 무엇이 다른가?

닭에게 모이로 주던 미꾸라지가 시장에서 금값으로 팔릴 만큼 세상이 변했다는 말이다

무지렁이가 노력해서 출세하면 미꾸라지가 용 됐다고 했는데 이제는 용으로 태어나는 미꾸라지다

벼락감투를 쓰고 꼴값을 하면 미꾸라지국 먹고 용트림한다고 비웃는데, 이제는 추어탕도 아무나 먹는 허접한 음식이 아니다

귀하고 값나가는 미꾸라지이니 함부로 천시하지 말라는 말이다


미꾸라지의 탄식이 옳다

미꾸라지는 개울물을 흐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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