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그놈이 그놈1

재정이 할아버지 2019. 6. 3. 17:51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자리는 소파다. 직장에 다니며 사회활동을 할 때는 잠시 머무는 자리였지만, 은퇴 후에는 하루의 절반 이상을 이 자리에 앉아서 세상과 교감한다. 여명(黎明)의 시간에 일어나 어슴푸레 잠에서 깨어나는 창밖의 숲을 바라보는 것이 나의 일과 시작이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숲에서 계절의 변화를 읽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의 숲을 바라보며 흘러가는 세월 따라 나도 변한다

 

숲은 벽에 걸린 풍경화처럼 항상 그 모습 그대로 처럼 보이지만 매일 지켜보면 생동감이 넘치는 유기체다. 키를 재고 서 있는 나무들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그늘을 지워 사람들을 품 안으로 불러 모은다.

새들도 산다. 까치와 참새, 박새, 딱따구리 같은 텃새는 이름이라도 알지만, 잠시 머물다 떠나가는 철새는 이름조차 모르고 숫자도 많다. 이른 새벽이면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귀가 바쁘다. 모양이 다르듯 소리도 제 각각이지만 새소리는 합창을 하듯 조화롭다

 

새소리를 들으며 TV를 켜는 것이 두 번째 일과다. 숲은 사는 마을이고 나의 세상이지만 TV를 켜면 내가 모르는 더 넓은 세상이다. 가 보지 못한 곳, 경험하지 못했던 일, 새로운 소식들을 보고 들으며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풍향계 역할을 한다

 

아침에는 주로 뉴스를 본다. 안 보면 궁금하지만 본들 대개는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 뉴스다. 뉴스의 핵심은 권력의 흐름이다. 숲이 태양의 지배를 받듯 세상은 권력의 지배를 받기에 뉴스를 안 볼 수는 없다

 

숲에서는 새들이 소리를 내어 질서를 유지하고 번식하며 살아간다. 세상은 세도가가 말로 질서를 유지하고 역사를 일군다. 뉴스는 세도가의 말을 전해 듣는 것이다.세도가에 대적해서 권력 싸움을 하는 사람들의 말도 듣는다. 뉴스를 통해서 모든 사람이 알만큼 알기에 방구석에 눌러 붙어 사는 나 같은 무지렁이도 사리는 분별한다

 

숲에 사는 새들도 좋은 자리에 둥지를 틀고 먹이를 많이 먹으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새들이 소리를 내어 우는 이유는 영역의 표시이고, 암수의 교감이고, 새끼를 불러 모으기 위함이다. 사람의 말도 품위의 표현이고, 동질성의 교감이고, 지지자를 불러 모으기 위해서 한다.

 

아침에 일어나 새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데, TV 뉴스를 보면서 사람의 말소리를 들으면 부아가 치밀고 화가 난다. 모양이 다르고 소리도 다른 새소리는 음악 소리처럼 들리는데, 모양도 같고, 같은 소리로 말하는 사람들의 소리는 항상 파열음이다.

농부는 손으로 일하고 세도가는 말로 일을 한다. 농부가 일을 하면 논밭에 곡식이 자라는데 세도가가 말을 하면 세상이 쑥대밭이 된다. 잘 사는 미래를 위한 계획이 없으니 시시콭콜 시비나 걸고 상처에 염장 지르기 경연장이라 그렇다

 

머리가 나빠서 그런지 새소리는 한마디다. 참새는 "짹", 까치는 "깍"이다. 새들은 그 한마디로도 숲에서 소통하며 조화롭게 산다

사람말도 "쉿" 한마디로 충분하다. 말로 일하는 세도가들의 말질에 진력이 났다.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고 뻥을 치는 세도가도 정작 자기집에 생긴 쥐구멍은 막을 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새보다 못한 사람은 모두 그놈이 그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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