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두더지 잡기

재정이 할아버지 2019. 5. 5. 05:50

마누라 입은 뿅망치다

나는 우리에 갇힌 두더지다

자유를 찾아 우리에서 탈출하려는 나와, 우리에서 나오지 못하게 뿅망치를 들고 지키는 마누라, 두 사람의 반복되는 두더지 게임이 나의 일상이다


휴게소나 유원지에서 경쾌한 전자음에 이끌려 뿅망치로 두더지를 잡는 게임을 가끔 한다

구멍 난 틀 안에 숨어 있던 두더지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재미,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내미는 두더지의 머리를 뿅망치로 힘껏 내리치는 쾌감은 아이나 어른이나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직장생활을 하며 하숙생처럼 지낼 때는 몰랐는데 은퇴를 하고 보니 우리 집 주인은 마누라다

백수가 되니 마누라의 포로가 되었고 집안이라는 수용소에서 허락된 일만 하고 산다

주는 대로 먹고, 시키는 대로 입고, 정해진 곳에서 잠을 잔다

아침에 일어나면 구석구석 윤기가 나도록 청소를 하고, 마누라가 밥하고 빨래를 하면 하인처럼 옆에서 기다렸다가 시키는 잔심부름을 한다

암묵지로 이루어진 규율이지만 하나라도 어기면 마누라의 뿅망치가 사정없이 내 머리에 꽂힌다


뿅망치로 머리통을 맞았다고 다치거나 죽지는 않는다

기분이 나쁘고 속이 상할 뿐이다

마누라는 전지전능한 신이다

모든 것이 옳고 모든 일이 선이다

뿅망치로 두들겨 맞지 않으려면 나대지 말고  시키는 일만 해야 한다


마누라는 1주일에 한 권씩 책을 읽는다

책을 읽다가 이해가 안 되면 책을 안 읽어 무식한 나에게 물어본다

얼렁뚱땅 소설 같은 상상력으로 짜깁기해서 일러주면 그것이 답인 줄 알고 넘어간다

고상한 척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이해를 하고 마음에 새기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마누라는 마을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오는데 반납은 나에게 심부름을 시킨다

책 반납 심부름을 하러 가려는데 마누라가 기왕에 도서관에 가니 만화책이라도 빌려다 보라고 뿅망치를 날린다

한두 번 하는 잔소리가 아니어서 성질이 났다

나는 책 읽는 사람이 아니고 쓰는 사람이라고 대들었다

마누라는 지지 않는다

요사이 한 줄도 글 쓰는 것을 못 봤다고 따발총 뿅망치 질이다


그런가?

어쩌다 보니 금년들어서는 블로그에 글을 쓰지 못했다

아무 이유도 없이 블로그를 찾지 않았다

마누라는 전지전능해서 그런 것 까지 다 알고 있었다

뿅망치를 드는 이유다


잔소리가 더러워서 한 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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