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광고풍선

재정이 할아버지 2016. 12. 20. 14:08

광고풍선

아침에 배달된 신문을 펼치면 어김없이 너댓장씩의 간지가 들어있다. 피아노 학원 개원, 마을 근처 슈퍼마켙의 새 상품 선전, 새로 지은 연립주택 분양안내, 양복점 할인권 등 내용도 다양하고, 내가 하는 사업을 널리 알리고자 몸부림치는 영세 상인들의 고뇌가 담겨져 있다. 간지의 광고 효과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광고의 대상이 되는 나의 경우는 낙엽을 쓸어내듯 그냥 쓰레기통에 구겨넣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좀 여유가 있는 일요일 같은 날은 도대체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대충이라도 훑어 보게 되는데, 대개는 믿을 수 없는 천박한 상혼으로 고소를 머금을 때가 많다.

진실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또 다음날 부터 낙엽을 털어내듯 그 많은 간지들을 쓰레기통에 구겨 넣는다.

우리나라 같이 유동성이 적은 정착 경종농업 민족에게는 전통적으로 광고라는 자기표현에는 소극적인 경향이 있다. 유년시절 시골에서 자랄적을 생각해 보아도 그렇다. 우리집에 소가 두 마리나 있다는 사실은 내가 궂이 말하지 않아도 근동 십리 안팎에서는 다 아는 일이다. 오히려 그런 사실을 이야기 하려 한다면 경솔하고 천박한 사람으로 손가락질을 받았다. 숨길래야 숨길수도, 알릴래야 모르는 것이 없는 생황이었다.

그러나 생활 영역이 넓어지고, 기능이 다양해지고, 모든 것이 자급자족이 아닌 상품화 시대에 살게된 지금은 사정이 아주 많이 달라졌다.

이십여년 전만 해도 도농을 막론하고 콩나물, 두부는 집에서 기르고, 해서 먹었다. 집을 지어도 대목수 혼자 대패와 망치 하나로 다 해결했다. 그러나 지금은 시골에도 어김없이 하루 한두번 열무, 오이, 계란을 팔러 다니는 이동 슈퍼마켙 트럭이 나타난다. 이십대 이하 연령층 에서는 매일 먹는 콩나물과 두부의 원료 콩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으리라고 생각된다.

참 좋은 세상이다. 다만 힘들게 돈을 벌어야 하지만,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가 있고 내것으로 만들 수 있는 세상처럼 신이나고 살맛나는 일이 있을까 싶다.

그래서 사람들은 좀 더 낳은 소득원을 찾아 고향을 떠나고 직업을 구하기 위해 공부하고, 기술을 연마한다. 그렇게 해서 수입이 생기면 그 수입을 바탕으로 생활에 필요한 필수품을 사기위한 소비 욕구에 빠지게 된다. 의식주의 양적 만족이 이루어지면 질적 추구에 바빠지고, 더 나아가서 문화, 오락, 정도가 지나치면 향락적인 것 까지 탐욕스럽게 찾아나서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통상적 소비과정이고 속성이다. 전문 직업을 필요로 하고 양산해내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다양해지고 발전해 나가는 문명의 속도에 비해 지식의 수용과 범위는 극히 제한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소비자에게는 알려주어야 그것이 내게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생산자는 알려야만 팔 수 있는 세상으로 바뀐 것이다.

광고는 그러한 수요와 공급을 연결하는 촉매제이다. 현대인은 너 나할 것 없이 광고의 노예가 되어 있으면서도 광고에 넌더리를 치며 살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텔레비전을 틀어도, 신문을 펴도, 잡지를 사도 절반은 광고이다. 전철도 광고로 도배 되었고, 거리도 온통 광고의 숲이고, 전봇대에도, 심지어는 우리집 아파트 손잡이도 열쇠가게 스티커가 붙어있어 멀쩡한 자물쇠가 고장나기를 기다려 짜증스럽게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그렇게 짜증스럽던 광고물들이 언젠가는 꼭 필요해서 일부러 찾아 헤맬 때도 있더라는 사실이다.

한밤중에 갑자기 가스가 떨어져 커피를 먹을수 없을 때, 떼어내도 떼어내도 자꾸 붙여놔서 짜증을 냈던 가스 가게 전화번호를 찾으러 남의 집 대문을 기웃거려 보기도 했던 경험이 있다.

그러므로 기업에서는 그러한 필요의 충족에 맞추기 위해 광고를 하나의 사업이 아니라 전쟁으로 생각하고 사운을 건다.

모든 지혜를 짜서 유리한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여 모든 사람에게 언제든지 알려주려고 결사적으로 노력한다.

우리가 즐기는 요구르트가 국내에서 조그만 중소기업에 의해 처음 생산되었을 때 회사는 망하고 제품은 돼지사료로 전락되었다. 요구르트가 무언지,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어떻게 먹는지, 아는 사람이 없는데 팔리기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대기업에서 회사를 인수하여 대대적인 광고를 했다. 요구르트는 하루 아침에 신데렐라처럼 가장 유망한 산업으로 등장했고, 오늘날 까지 인기를 지속하고 있다. 놀라운 광고의 힘이다.

전매청이 전매공사로 체제를 전환한 이후, 조직과 직제가 개편되고 업무내용과 질이 많이 달라졌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이 홍보가 아닌가 싶다. 국영기업이라는 제한, 전매라는 장점, 기호식품이라는 특수한 제품을 상품으로 내건 전매공사에서 광고와는 동의어라고 볼 수 있는, 목적성 업무인 홍보에 구태어 그렇게 노력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지만 우리가 하는 일의 당위성과 효율성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일이었을 것이다. 담배는 우리 사원 입장에서는 소중한 상품이지만 사회의 요소요소에는 따가운 시선으로 노려보는 저항의 눈초리가 있음도 알고 있다.

그래서 같은 국가 사업이면서도 떳떳하지 못하고 죄를 지은듯한 자학에도 빠질때가 종종 있었다. 건강 문제가 나오면 제일 먼저 형틀에 매달려 곤장질을 당하는 담배, 불량 청소년의 징표가 되는 담배, 거리 쓰레기는 온통 담배 꽁초, 화재 현장에서는 동일범 전과자로 첫번째 용의선상에 지목되는 담배, 담배를 만들어 봉급을 받고, 그 돈으로 먹여 살리는 공도 모르고 집안에서 조차 마루나 화장실로 쫓겨나 피울 수 밖에 없는게 담배다. 그런 담배를 놓고 홍보니 광고니 한다는 자체가 듣기에 따라서는 놀라운 변화라면 변화일수 있다. 그래서 홍보나 광고라고는 해도 다른 상품에 비하여 제한이 많다.

소비촉진은 엄두도 못내는 금단지역이고, 윤리상 해서도 안되는 일이므로 애연가의 편의를 위한 제품소개와 여러 문제점에 앞서 담배가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양담배가 수입개방 되면서 입장은 바뀌고 내용도 격렬해졌다.

천적이 나타난 것이다. 천적은 세계 최고의 품질을 망라해서 다양한 기호를 누구에나 충족시킬 수 있고, 토종이 전멸할 때 까지 얼마든지 가격싸움에 대처할 막강한 재력의 소유자다. 토종이 멸종하는 것은 시간 문제 일 뿐이다. 그래서 애국심이라는 예방주사로 양담배라는 전염병에 대한 항체를 길러온 것이 홍보의 목적이었다. 그 효과는 놀랄 만큼의 성공이라고 확신한다. 그것은 기세좋게 돌진해온 양담배가 기후적응을 못하고 아사직전에 있다는 현 시점의 사실이 입증한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 부터라고 나는 생각한다. 약효가 빠른약은 저항성도 빨리 온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다. 그것은 일간 신문에 잘 나타나고 있다. 그토록 양담배 비상에 걸려 온 지면을 가득 메우던 양담배 기사를 지금은 눈 씻고 찾을래야 찾을 길이 없다. 반대로 민성난에는 국산담배 품질에 대한 불만, 가격에 대한 불만, 유통과정의 모순, 경작 농민의 소외가 예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게 표출되고 있다.

나는 우리 담배의 면역기능 강화를 위해서는 지금 부터라도 고도의 광고 기술을 발휘한 홍보전략을 세우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광고란 원래가 자신을 돋보이려는 행위이므로 단점보다는 장점이 우선이고, 단점은 모르거나 의도적으로 기만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광고의 대부분을 믿지 않으려 하고, 사회 여론에도 지탄 대상이 된다.

사람이 사람 마음을 감동시키고 자신을 믿게하는 일은 연구나 기술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고도의 광고기법은 진심을 보이는 일이다. 사실을 사실대로 알리고,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라면 성의를 다해서 이루어 주려고 노력하였을 때, 소비자는 만족과 신뢰를 보내주는 것이다. 양담배와 품질 경쟁에서 우리가 이길 수 있다는 오만이나, 낳다는 기만은 버려야 한다.

양담배의 원료인 미국잎담배는 미국에서도 기후조건이 담배 생육과 품질에 가장 좋은 지역만을 골라서 재배되고 있으며, 그것도 모자라 세계 각국에서 좋은 잎담배만 싼값에 수입해다 만드는 담배다. 그러나 우리나라 잎담배 생산은 기후가 맞지 않아 품질이 열등하다. 추위에 약해서 얼음을 깨고 비닐을 씌워 놓고 씨를 뿌려야 하며, 품질에 가장 민감한 수확기의 절반은 장마철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생산된 담배 중에서도 쓸만한 원료는 경작농민 보호 차원에서 막대한 적자를 감수해가며 30% 이상 수출하고 있다. 쌀이 좋아야 밥맛도 나는 법이다. 나쁜 쌀로는 밥솥이 아무리 좋아도 감칠맛 나는 좋은 밥을 지을수 없다는 것을 밥을 해 본 사람은 다 안다. 그런 원료, 부족한 시설로도 [88]이나 [솔]같은 담배를 만들어 낼수 있는 기술이라면 애연가 모두에게 격려의 박수를 받아야하고 자긍심을 가져도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애연가는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 모든 것이 대부분 그렇다. 그래서 걸핏하면 지탄받고 불신당한다. 야누스의 양면성을 지닌 담배, 그러나 국가가 필요로 하고, 소비자가 원하고 경작인과 전매가족이 살기위한 담배라면 모두가 한 개씩의 커다란 진실의 광고 풍선을 들어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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