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439

미래는 모른 채로

모든 사람과, 세상의 이치를 통달해서 과거는 물론 미래까지 정확하게 알아맞히는 점쟁이는 몹시 불행할 것 같다 자신의 일이야 말할 것도 없고, 남의 일이라도 미래를 미리 알아버리면 사실대로 말하기도 어렵고 말해주지 않아서 닥쳐올 불행을 막지 못한 책임에 괴로운 삶을 살게 될 것 같다 점쟁이는 미래를 알기는 하지만 바꾸어 주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건강검진에서 비롯된 나의 암투병은 수술 일정이 잡히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암이라는 무서운 병이 왜 나에게 생겼을까, 얼마나 살 수 있을까, 치료비는 얼마나 들까..... 처음에는 질병과 관련된 궁금증과 그것을 규명하는 단계였다 왼쪽 폐에 4개, 오른쪽 폐에 2개의 결절이 암으로 의심된다고 크기까지 적시했고, 과거의 사진과 비교해보면 왼쪽에서 오른쪽 폐로 전이된..

투병일기 2020.11.23

黎明의 시간에

새벽 6시. 집을 나선다. 여느 때 같으면 잠자리에 뭉개고 누워있거나 TV로 뉴스를 보고 있을 시간이다. 9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하는 봉급쟁이의 생활습관은 대부분 그렇다. 은퇴 후에도 생활습관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미명의 시간에 이렇게 집을 나서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아주 특별한 일이다 길을 나서니 소싯적에 읽었던 스님의 글귀가 또 나를 붙잡는다. 어디를 이렇게 급히 가시느냐고 스님이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었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스님에게 대답했다. 밭에 일하러 갑니다. 조카 결혼식에 갑니다. 손자 보러 아들 집에 갑니다. 공부하러 학교에 갑니다...... 모두 그렇고 그런 연유로 바쁘게 길을 가야 하는 사정이다. 스님은 하늘을 바라보며 헛헛하게 웃었다. 바보들, 결국은 죽으러 가는 길인데..

투병일기 2020.10.24

헛 살았다

古稀가 불원인데 이제야 헛살았음을 깨달았으니 나는 바보다 人生七十古來稀 사람은 70살 나이 먹도록 살기가 힘들다는 말인데 그 나이에 임박해서 보니 그 말부터가 헛 것이다 나이가 비슷한 내 친구들 거의 모두는 아직 팔팔하고 멀쩡하다 경로당에도 못 간다 웬만한 시골에서는 청년단원이다 나이 70을 이르는 말 중에 고희보다는 공자가 말했다는 從心에 마음이 간다 나이 70을 넘기면 마음먹은 대로 처신해도 법도에 그르지 않더라는 말이니 내가 그렇다 돈도, 명예도, 건강도 이제는 하늘의 섭리에 따르리라고 결심을 하고 나니 누구에게라도 진심을 말하는데 거리낄 것이 없다 좋으면 하고 싫으면 안 한다 살 만큼 살았다는 고희에,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나이인데 어쩌다가 한낱 미생물인 바이러스에 진 세상을 산다 세상을 지..

생원일기 2020.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