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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장난

침수된 도로가 물놀이장이 되었다 대전천 하상 주차장이다 차는 없고 물놀이하는 아이들만 모였다 평생 이런 물난리는 처음이다 지루한 장마가 달포를 넘겼다 매일 오는 비가 지루하기도 하지만 내렸다 하면 폭우라 온 세상이 물바다다 노아의 방주라도 만들어야 할 지경이다 대전의 명소 목척교 아래 아이들은 물에서 신나서 뛰놀지만 이 물은 수많은 민초들의 눈물이다 밀려든 토사에 삶의 터전을 잃고 논밭이 물에 잠기고 아까운 생명이 세상을 떠났다 아이들이 무엇을 알랴 도로 까지 넘쳐흐르는 빗물이 신기한 놀잇감일 뿐이다 아이들이 처음으로 달려보는 개울물 자연재해로 물이 얼마나 무서운지 새삼 느낀다 물놀이는 즐겁지만 성난 물은 재앙이다 불난 집은 재라도 남지만 물은 티끌까지 쓸어간다는 옛말이 새삼스러운 나날이다 훗날 아이들에..

5년 묵은 재정이

아이들에겐 모든 날이 특별하지만 그중에서도 생일이 으뜸이다 8월 1일이 생일이라 한 달치 생일을 모아서 치르는 어린이집에서도 재정이는 제 날에 생일 행사를 맞는다 촛불 다섯 개를 밝히는 재정이 생일 케이크 이제는 5년 묵은 중고품이다 삼복더위에 맞는 생일이라 집에서는 간단히 촛불만 밝힌다 탈 없이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수수팥떡과 간식으로 잘 먹는 수제 햄버거를 엄마가 만들었다 할아버지가 농사지은 토마토는 재정이가 아기 때부터 제일 좋아하는 토마토 수프 재료다 다섯 번째 생일의 축하인사는 동생 재민이의 볼 뽀뽀가 백미였다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재정이가 이발을 했다 후텁지근한 날씨에 땀이 많이 나서 시원하게 잘랐다 고무줄로 머리를 묶고 다니던 재민이도 미용실에서 재정이가 조용히 머리를 자르는 것을 보고..

얘들이 왜 이래?

아들이 사진을 보내왔을 때 내 눈을 의심했다 밥그릇을 들고 서 있는 처량한 모습 손자들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 일까 따듯한 밥 먹이고 따듯한 옷 입히고 따듯한 곳에 재우고 싶은 것이 자식을 둔 부모의 마음이다 부모의 헌신은 부모가 되어서야 겨우 조금 알게 된다 어린것들이 부모 마음을 알 턱이 없다 엄마가 따듯하게 밥을 지어 상에 올리면 손자들은 밥이 뜨겁다며 이런 자세와 이런 표정으로 선풍기 앞에 서서 밥을 식혀 먹는다고 한다 반찬도 마찬가지다 하나하나 들고 가서 식혀 먹는다 그렇다고 찬밥에 찬 반찬을 먹일 수 없는 것이 부모다 아이들은 먹어 보고 익숙한 음식에만 관심을 갖는다 전복이 먹고 싶은 것이 아니고 먹을 줄도 모른다 시장에 따라 갔다가 수족관에서 헤엄치는 커다란 생선을 보고 물고기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