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머리빗

재정이 할아버지 2017. 2. 8. 21:29

아기가 마누라 머리빗을 들고 다니며 내 머리를 빗겨준다.

아기가 어른들이 하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기 시작했다

물을 마시면 물컵을 달라고 따라 다니고, 청소를 하면 걸레를 달래서 청소하는 시늉을 한다.

마누라가 시간만 나면 거울 앞에 앉아서 머리를 빗으니 아기가 머리빗을 들고 다니며 마누가가 되었건, 내가 되었건 앉아 있으면 쫓아와 머리에 빗질이다

나는 이제 까지 내손으로  머리에 빗질을 해 본 기억이 없다.

게으르고 번거로운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머리를 감고 툭툭 털면 그만이지 빗질은 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머리를 감고 빗질을 하며 머리를 말려서 가르마도 타고 멋을 내지만 나는 가르마가 안되어서 그랬다

이발소에서 이발을 하고 나서 가르마를 하면 내 머리는 금방 빗자루 처럼 흐트러 진다

내 머리가 왜 그러는지 내가 내 머리를 볼 수 없으니 알 수도 없었다

그런데 얼마전 새로간 이발소 이발사가 내머리를 깍으면서 가르마를 어느쪽으로 어떻게 타는지 물었다

가르마를 안해봐서 모르겠다고 했더니 이발사가 내 머리를 한참 빗질을 해보다가 쌍가마라 가르마는 안된다고 알려준다

쌍가마도 확실한 쌍가마가 아니라 언뜻 봐서는 모르는 약한 쌍가마인데 어느쪽으로 가르마를 타도 머리가 일어설 수 밖에 없는 고약한 쌍가마라고 알려 주었다

내 몸뚱어리도 내가 모르는 구석이 참 많다

등짝에 난 검은 점이 가려워서 어떻게 생겼는지 거울로도 보이지 않아 마누라가 사진을 찍어 보여주기도 했다

아마 맨눈으로는 내몸의 절반도 보지 못 할 것이다

그래서 내 머리 모양이 있는 그대로 툭툭 털여 말린 모양이 수수했던 이유를 환갑이 지나서야 알았으니 세상 모든 일을 안다고 말 할 것이 하나도 없다

아기는 그런 사정이야 알길이 없으니 열심히 따라 다니며 내머리를 빗긴다

어느 회사 영업사원 입사시험 문제가 중에게 머리빗을 팔아오라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아기는 자라서 큰놈이 될것 같다

평생 머리빗질을 안한 할아버지에게 머리를 빗기는 것을 보면 분명히 보통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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