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질경이

재정이 할아버지 2017. 5. 11. 21:33

나는 마누라를  질경이로 알았다

그런데 마누라는 엉겅퀴였다

저녁에 반주로 소주를 한잔해서 취기가 있었다

잠을 자려고 침대로 올라가다가 발을 헛디뎌 잠들어 있는 마누라 발을 밟은 모양이다

마누라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나서 왜 잠자는 사람을 건드리느냐고 벼락 같이 성질을 낸다

어지간히 아팠는지 한참이나 발목을 주무르다가 분을 못참고 내 베게를 집어던지며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마누라는 성격이 무던한 편이라 지금 까지 이런 일은 한번도 없었다

우리집 어른들이 싫은 소리를 해도 얼굴 한번 붉히지 않고 참는다

친정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나에게 말 한마디 없이 조용히 해결한다

아들이 공부를 안해도 회초리 한번 안들고 말썽을 피워도 내색을 하지 않던 마누라다

다혈질인 내가 아무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불같이 성질을 내고 포악을 떨어도 시간이 흐르면 제자리로 돌아오겠지 하면서 참고 기다리는 성격이다

그래서 나는 마누라를 질경이로 알았다

길가에 다소곳이 자리잡고 앉아서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도 아프다는 소리를 못하고 마차가 지나가며 상처를 내도 고통을 참아내는 질경이처럼 살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엉겅퀴로 변했다

엉겅퀴는 스코틀랜드 국화다

잎과 줄기, 꽃에 날카로운 가시가 있지만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수호신으로 섬기며 신성시 하는 꽃이다

고대에 있었던 일이다

덴마크와 전쟁에서 스코틀랜드가 패전 위기에 처해 있었다

덴마크 병사들은 마지막으로 스코틀랜드 왕궁을 함락시키기 위해서 야간 기습에 나섰다

덴마크 병사들이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맨발로 기어서 왕궁으로 가다가 엉겅퀴에 발을 찔렸다

엉겅퀴는 "누구든 나를 건드리면 무사하지 못하리라" 라고 비명을 질러서 졸고 있던 스코틀랜드 병사들을 깨웠다

잠에서 깨어난 스코틀랜드 병사들이  덴마크 병사를 무찌르고 왕궁을 지키게 했다는 엉겅퀴다

베게를 들고 거실로 쫓겨나와 쪼그리고 잠을 청하니 서글프다

질경이 처럼 순하고 밟아도 아프다고 소리도 못내던 마누라가 온몸에 가시로 무장한 엉겅퀴로 변했으니 앞날이 아득하다   

잠도 오지 않는다

내일은 야관문이라도  베러 가야할까?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의 길을 떠나야 할까?  


우리집 앞 인도에 자라고 있는 질경이

수많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도 꿋꿋이 자란다

봄나물로도 좋고,  한방에서는 쓰임새가 다양한 한약재다 


    

가시가 날카롭게 돋은 엉겅퀴

엉겅퀴도 봄에는 나물로 좋고,  한방에서는 쓰임새가 다양한 한약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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