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자식을 사랑한 죄

재정이 할아버지 2017. 1. 7. 06:40

손자가 돌을 지나니 부쩍 자란다. 네발기기로 안가는 곳이 없다. 손에 닿는 것은 그대로 두는 것이 없다.  손자 돌보기가 보통 힘든게 아니다. 이제는 의사 표현도 조금씩 하기 시작해서 좋고,  나쁨,  싫음을 표정과 소리, 동작으로 알린다. 손자와 의사소통이 조금이라도 되는 점은 손자보는 입장에서는 다행이다.

손자와 의사소통이 이루어 지면서 신기한 일이 생겼다.  며느리나 할머니가 싫은 일을 시킬때, 갖고 싶은데 안 줄때, 손자는 할아버지인 나에게 도움을 청한다.

우리집에서는 내가 제일 어른이니 누군들 내 말과 뜻을 거역할 수 없다.  어린것이 무리의 서열 우위인 할아버지를 어떻게 알아 보고 필요할 때 도움을 받으려 하는지 신기한 일이다.  나는 손자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거절할 수가 없다.  오히려 어떠한 잘못도 너그러이 이해하고 토닥여 준다.  부디 손자가 따듯하고, 배부르고, 마음 편히 뛰놀고,  아프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내 자식을 키울 때는 철이 없어 아무것도 몰랐다.  가정과 직장이 안정되지 않은 시기이었기에 먹고 살기 조차  바빴다. 아기가 자는지, 먹는지, 아픈지 아무것도 모른채 하루 하루 버겁게만 살았다

그러나 이제 환갑을 훨씬 넘겨 겨우 얻은 손자는 모든게 반갑다.  삶의 무거운 짐을 내려 놓은 홀가분한 상태에서 내 품에 안긴 손자는 첫사랑 처럼 애틋하고, 사랑스러워 무엇이라도 아낌없이 주고만 싶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이고 어른의 마음일 것이다.

아들과 며느리가 출근을 하면 손자를 우리 집으로 데려 온다.  나는 지금 하루의 절반 이상을 손자 돌보는 일에 매달린다.

요즘 아기들은 바쁘다. 돌 전에는 수 많은 예방주사 맞으러 다니느라 바쁘고, 돌이 지나니 문화쎈터도 가고 집에서 노래 듣고 율동체조 하느라고 바쁘다. 장난감도 손에 쥐고 노는것 부터 미끄럼틀, 그네 까지 아기 방 전체가 놀이방이고  장난감 방이다. 장난감에서 나오는 노래도 보통 노래가 아니라 영어노래, 숫자놀이 노래 등 어른이 들어도 공부되는 노래가 많다.  놀이도 노래도 공부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잘 따라 한다. 그래서 요즘 태어나는 아기들은 뱃속 부터 배우고 나온다는 우스개 소리를 한다. 그러니 세살배기가 영어로 노래하고 다섯살이면 동화책을 읽고, 초등학교는 졸업장 받으러 놀러간는 말이 나올 법 하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60년대에는 연필을 쥘 줄도 모르고 학교에 갔다.  가슴에 하얀 손수건을 매달고 콧물 닦는 것 부터 배웠다. 초등학교에서는 한글을 읽고, 쓰고, 이해하면 되고 ,산수는 가감승제를 이해하면 우수학생으로 졸업이었다. 초등학교 가기 전에는 산으로 들로 놀러 다니는게 일 이었다. 개구리 잡고 메뚜기 잡아서 가지고 놀았다.

아기뿐만 아니라 요즘은 엄마들도 바쁘다. 돌이 지나기 무섭게 좋은 어린집을 찾는다, 주말이면 놀이방을 간다. 그런 곳에서 만나는  또래 아기들과 성장과 발달을 비교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느라 쉴 틈이 없다.  제 자식을 잘 키워서 특별한 영재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집념의 시작이다.  

우리나라  교육열은 대단하다. 불 같은 교육열과 그 틈을 파고 드는 상술이 상호작용하여 항상 부모들은 조급하고 빠쁘다 . 뜨거운 교율열은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토대가 되기도 했지만 과다한 학비부담이 사회 양극화에 부정적으로 작용해서  정부가 과외를 규제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오죽하면 다른 나라에서는 하라고 해도 안하는 공부를, 하지 못하게 규제하는 나라라고 비아냥 감이 되기도 했다

옛날에는 개천에서 용이 많이 나왔다. 도시락 하나 싸들고 나가면 공부하러 학교가는 것이고, 부모는 학교 운동회 때 계란 몇 개 삶아 가지고 가서 담임 선생님과  처음 인사 나누고,  성적은 통지표를  받아 봐야 알 수 있던 시절이다,  제가 스스로 공부를 열심히 하고 부모가 재력이 있으면 진학을 했다.  공부에 소질이 없으면 돈 벌러 갔다. 지금 처럼 과외니 특별활동이니 해서 돈으로 성적을 쌓던 시절이 아니었다.  그래서 시골 구석에서 인재가 나와 신분이 상승하는 것은 예삿일 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부모의 재력과 학생의 성적이 비례한다.  그래도 안되면 돈으로 성적을 사기도 한다.

최순실이 딸의 성적을 돈으로 사려다 큰 사단이 났다. 욕심이 지나쳐 나라의 권력 까지 휘둘러 딸을 잘 키워 보려다 딸도 망치고, 나라 까지 말아 먹는 형국이 되었다.

최순실의 욕심은 딸 키우는 문제 말고도 우리나라 사회전체에 미쳐,  잘못된 문제들이 양파껍질 처럼 벗겨도, 벗겨도  끝이 없이 나타나는 이상한 사건으로 비화되고 있다. 나는 이상한 이 사건을 우리나라가 살기 좋은 세상이 되기 위서는 언젠가 겪어야 될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복잡하게 얽혀 있어도  세월이 가면 밝혀질 역사라고도 생각한다

모든 사건의 내막을 소상히 알 수 없지만 지금 까지 알려진것 만으로도 국민들은  분노와 실의에 빠졌다.  그러함에도 최순실의 딸 사랑은 민망할 정도로 뻔뻔하다.  모든 잘못을 모르는 일이라고 부정하면서도 딸 문제에 대해서는 눈물로 진실을 말하기 때문이다.  어린 딸은 죄가 없으니 건드리지 말라는 눈물의 호소가 그것이다.

오래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 천도제를 조그만 사찰에서 지낸 적이 있다.  불교에 문외한인 나는  스님들이 시키는 대로, 하라는 대로 의식을 치루고 있는데 스님의 법문하나가 귀에 번쩍 뜨였다. 어미가 자식을 낳아 먹이고, 가르치느라 지은 죄는 죄가 아니니 부디 극락왕생의 길로 가시라는 말이었다.  어미가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저지른 죄는 죄가 아니라는 말이다.

최순실의 눈물이 스님이 말하는 자식을 먹이고, 가르치기 위한 죄의 사죄 눈물이라면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을 권력과 돈으로 매수하고,  희생시킨 잘못이 아니고 오로지 딸 만을 걱정하는 눈물이라면 이것은 악어의 잔인한 눈물이기 때문이다.

나는 최순실의 잘못을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최순실의 잘못은 우리 모두가 세워 놓은 허수아비 지도자의 무능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책임져야 할  잘못인 것이다. 민주주의 다수결 원칙의 치명적 결함인 다수결의 함정에 깊숙히 빠져버린 비극이다.

손자는 며느리가 야단치면 할아버지인 내게로 달려 온다.  손자는 내 무릎을 피난처로 삼는다.  며느리는 나에게 손자의 잘못을 고자질 한다.  며느리의 고자질 까지 다 들은 후에  나는 손자에게 손자의 잘못을 조곤 조곤 타이른다.  며느리에게도 어린 자식에게 매 부터 들지 말고 알아 듣게 타일러서 바르게 가르치라고 충고 한다.

어미가 자식을 사랑해서 하는 일, 어미가 자식을 훌륭하게 키우려고 하는 일은 죄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 자식 먹이려고 남의 자식 밥그릇을 뺏어 오거나,  내 자식 입히려고 가게에서 옷을 훔쳐와도 된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어미가 착하게 열심히 살면서 자식을 양육하다가 나도 모르게 지은 죄가 있다면 그것을 용서하자는 의미일 것이다.  자식은 어미가 바르게 살면서 바르게 가르쳐야  어미의 본을 받아 효도하고 충성하는 인재가 된다.

최순실의 잘못된 딸 사랑을 시작으로 세상이 갑자기 혼탁하고  고단해 졌다.  어지러운 세상은 어진 어른이 나와야 수습이 된다.  나라의 권위 마저 최순실의 농간에 무너져 내렸으니 어미가 자식을 버리고 집을 나간 꼴이다. 자식은 춥고 배고파서 거리로 나와 이 밤도 촛불을 들고 할아버지를 찾는다.


후기 : 청도 선생님이 기다리실것 갈아 급히 하나 올립니다.

         오랫만에 써보고 주제가 어려워 힘들었습니다.

         시작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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