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소 도둑

재정이 할아버지 2017. 1. 19. 18:42

오늘 아침은 뿌연 안개가 하늘에 가득하다

안개인지 미세먼지인지는 몰라도 앞이 잘 안 보이고 마음도 울적하게 하는 그런 아침이다

아침에 들려 오는 우울한 뉴스로 옛날 이야기가 생각난다.

시골마을에서 농부가 소를 잃어 버렸다.

농부는 이날도 평소와 같이 들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일을 하다 쉬는 시간에 소는 들판에서 풀을 뜯어 먹게 하고, 농부는 냇가에서 잠깐 목욕을 하고 왔는데 그 사이에 소가 없어진 것이다.

농부는 소를 찾아 들판과 마을을 헤집고 다녔다.

그런데 장에 다녀오던 마을 사람이 낯선 남자가 소를 끌고 가더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농부는 청년들을 모아서 자전거를 타고 마을 사람이 일러준 길로  미친듯 달렸다

한참을 가다보니  정말로 자기 소를 몰고 가는 낯선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긴 나무 회초리로 소를 몰며 천천히 가고 있었다.

농부는 청년들과 합세하여 남자의 멱살을 움켜쥐고 왜 남의 소를 훔쳐가느냐고 따졌다.

그러자 그 남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농부를 바라보며, 내가 길을 가는데 소가 나를 따라 왔고, 소 엉덩이에 쇠파리가 많이 꾀어 파리를 쫓아주며 함께 가고 있었을 뿐이라고 대답을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농부도, 마을 청년들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소 도둑은 분명한데 도둑질을 했느냐고 소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이래서 도둑이라고 몰아 세울 근거가 없는 것이다.

외양간에서 소를 빼낸것도 아니고, 같이 가면서도 소 고삐를 잡고 몰고 간 것도 아니고, 소가 따라 간 것인지, 사람이 소를 따라 간 것인지 알 수 없는 기막힌 노릇인 것이다.

소를 찾아 다행이기는 했지만 농부는 멱살을 풀고, 도둑질한 낯선 남자에게 무례를 백배사죄 하고 마을로  돌아 왔다. 

이 이야기는 학교에서 "법제대의" 과목을 배우며 증거주의를 강조하기 위해 선생님이 들려준 이야기다.

법치주의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법리를 따질 때에는 증거가 이렇게 중요하다.

이재용 구속 기각 소식을 듣는 순간 이 이야기가 왜 생각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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