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자 재정이 88

무엇이 될꼬?

재정이가 처음 그린 그림 유치원 소풍에서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그림이라고 했다 피카소의 추상화처럼 난해하지만 색감이나 구도는 안정감이 있어 좋다 집에서도 글씨를 배우기 전에 그림 연습을 한다 샘이 많은 재민이도 형을 따라 그림을 그린다 유치원에 다니면서 재정이는 태권도에 푹 빠졌다 관장님이 유일신 스승이다 관장님을 입에 달고 산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도 태권도 기본 동작 시범을 보인다 태권도장은 종합 무도장이다 다양한 스포츠를 놀이화하여 즐기며 배운다 촛불을 통해서 정신집중 훈련도 한다 요즘 태어난 아이들은 TV, 휴대폰 영상을 보며 놀고 배운다 숟가락보다 전자기기 다루는 법을 먼저 배웠다 유아 영상물 내용도 다양해서 말을 시작하면 세상 사물 모르는 것이 없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옥상에 아이들에..

그래도 추석

코로나가 세상을 쥐락펴락 하거나 말거나 대통령은 될 사람이 될 것이고 세상살이 힘들다고 아우성쳐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때는 그랬다며 껄껄 웃을 일이다 유난히 힘들게 넘어가는 올해의 추석이지만 그래도 재민이는 즐겁다 명절에나 입어보는 한복 내년에는 작아서 못 입어도 걱정 안 한다 할머니 집에 가져갈 꼬치를 만든다 재정이 사진빨 눈으로 보면 꺼벙인데 사진은 배우급이다 정성껏 만들어야 차례상에 오른다 재민이가 알밤을 주으러 가자고 성화다 유튜브로 알밤 줍기 행사를 본 모양이다 유튜브에서 본 대로 저도 해보고 싶다고 졸라서 금병산 밤나무숲에서 알밤을 주웠다 밤송이 가시가 호랑이보다 무서워 밤송이 하나에 온 가족 연장이 달려들어 알밤을 꺼낸다 주워온 알밤은 당장 삶아서 먹어야 제맛 갯마을 체험 유튜브도 있다 조..

재정이의 베터파크

재정이 생일은 8월 1일 삼복더위 한가운데다 오붓하게 식구들이 둘러앉아 생일상을 받기는 어렵다 촛불도 생일 전야에 켰다 이번 생일은 마침 일요일 할머니와 관광농원 물놀이장으로 갔다 너무 더워서 아침에 산 생크림 케이크도 녹아내린다 재정이 생일이면 생각나는 것이 연꽃이다 재정이가 태어나던 날 할아버지 집 현관 화분에서 탐스런 연꽃 12 송이가 피었다 연꽃을 피우려고 할아버지는 해마다 연을 심지만 이후로는 연꽃을 보지 못했다 어린이집에서 재민이에게 내준 숙제 토마토를 가꾸고 토마토가 익으면 사진을 찍어 보내세요 어린이집에서 나누어 준 토마토 묘목을 아파트에서 기르지 못해 말라죽기 직전 할아버지에게 맡겼다 토마토는 할아버지 집 옥상에서 큰 수술받고 다시 살아나 꽃 피고 열매도 맺었다 연꽃 대신 토마토 꽃이 활..

꽃 중의 꽃

지금 우리 사회의 화두는 변화와 혁신이다 오래되고, 관행처럼 해왔던 일은 옳고 그름을 떠나서 척결의 대상이다 새롭고, 남이 하지 못하는 블루오션을 찾아내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지나간 어버이날 즈음 재미있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어르신들이 어버이날 받기 싫은 선물 1위가 꽃이었다 어버이날의 상징인 카네이션이 받기 싫은 선물 1위라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재민이가 어버이날에 어린이집에서 소품을 가져왔다 종이로 만든 카네이션을 엄마 가슴에 달아주는 것이 아기들의 어버이날 행사인데 꽃 대신 소품을 가져온 것이다 가져온 소품으로 치장하니 재민이가 꽃이 되었다 어르신들이 꽃 선물을 싫어한다 해도 나는 꽃이 좋다 꽃 중의 꽃 재민이 꽃이 나는 좋다 재민이는 놀이터에서 모든 기구를 잘 다룬다 그네..

졸업

나비는 알로 태어나지만 애벌레가 되어 열정적으로 사는 법을 배우고 번데기가 되어 고뇌의 시간을 거친 후에 우화 하여 아름다운 날개를 펼친다 그 성장의 과정 매듭 하나하나를 졸업이라고 이른다 한 마리의 나비가 하늘을 날기가 그처럼 어렵고 힘든데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답게 살기는 얼마나 어려울까 재정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사람답게 살기 위한 첫 번째 과정을 졸업했다 3년의 어린이집 과정을 마쳤다 졸업장과 선물도 받았다 언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어떻게 만날지 모르는 친구들 기념사진으로 기억해 둔다 우리가 자랄 땐 어린이집이라는 말 조차 없었는데 이제는 어린이집 졸업식에 학사모가 등장한다 재민이는 4세 반으로 진급되었다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새해 아침 한 해의 시작이라고 손자들이 정장을 하고 찾아오..

재민이 세 번째 생일

신사, 숙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꿈보 어린이집 아이돌 스타 박재민 인사드립니다 나의 세 번째 생일 축하를 위해 찾아주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저와 함께 아름다운 사진과 추억을 많이 남겨주세요 그리고 함께 노래 부르며 이 밤을 즐깁시다 재민이 생일 2부 무대 할머니 집입니다 마음에 안 듭니다 꿈보 어린이집 무대와 비교가 되지 않나요 나, 아이돌 스타입니다 공연 중간에 할머니가 연 날리기를 해줘서 마음이 조금 풀리기는 했지요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 끝내줬습니다 다른 반찬이 필요 없는 기똥찬 맛이었습니다 생일 여행은 청주에 있는 관광농원으로 갔습니다 빙어를 잡았습니다 형도 빙어를 잡았습니다 노동의 대가는 기쁨으로 보상받지요 빙어 튀김은 노동의 보상입니다 형도 맛나게 먹습니다 이런 맛 평생 처음이라네요 ㅎㅎ ..

시작이 반

아이는 모든 것이 처음이고, 시작이다 누구와 처음 하고 누구와 시작했는지 아이의 심성을 지배하는 경험이 된다 어느 날 갑자기 재정이가 연필을 잡고 종이에 줄 긋기를 시작했다 가을에 시작한 줄 긋기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아이의 성장과 발달은 어른이 하고 싶다고 어른이 해야 한다고 시켜서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시작을 했으니 반은 이루었다 그러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것이 어른이 할 일이다 아이들은 보는 대로 따라서 한다 아빠가 하는 대로 엄마가 하는 대로 아이들이 따라서 하는 것이 성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는 것도 또래가 있으면 경쟁을 한다 재민이가 기저귀를 떼자 변기에 오줌을 누는 것도 시샘을 하고 경쟁을 한다 눈이 왔다 작년에는 눈이 오지 않았으니 재정이는 오랜만에 보는 눈이고 재민이는 처음 보는 눈이다 눈..

물장난

침수된 도로가 물놀이장이 되었다 대전천 하상 주차장이다 차는 없고 물놀이하는 아이들만 모였다 평생 이런 물난리는 처음이다 지루한 장마가 달포를 넘겼다 매일 오는 비가 지루하기도 하지만 내렸다 하면 폭우라 온 세상이 물바다다 노아의 방주라도 만들어야 할 지경이다 대전의 명소 목척교 아래 아이들은 물에서 신나서 뛰놀지만 이 물은 수많은 민초들의 눈물이다 밀려든 토사에 삶의 터전을 잃고 논밭이 물에 잠기고 아까운 생명이 세상을 떠났다 아이들이 무엇을 알랴 도로 까지 넘쳐흐르는 빗물이 신기한 놀잇감일 뿐이다 아이들이 처음으로 달려보는 개울물 자연재해로 물이 얼마나 무서운지 새삼 느낀다 물놀이는 즐겁지만 성난 물은 재앙이다 불난 집은 재라도 남지만 물은 티끌까지 쓸어간다는 옛말이 새삼스러운 나날이다 훗날 아이들에..

5년 묵은 재정이

아이들에겐 모든 날이 특별하지만 그중에서도 생일이 으뜸이다 8월 1일이 생일이라 한 달치 생일을 모아서 치르는 어린이집에서도 재정이는 제 날에 생일 행사를 맞는다 촛불 다섯 개를 밝히는 재정이 생일 케이크 이제는 5년 묵은 중고품이다 삼복더위에 맞는 생일이라 집에서는 간단히 촛불만 밝힌다 탈 없이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수수팥떡과 간식으로 잘 먹는 수제 햄버거를 엄마가 만들었다 할아버지가 농사지은 토마토는 재정이가 아기 때부터 제일 좋아하는 토마토 수프 재료다 다섯 번째 생일의 축하인사는 동생 재민이의 볼 뽀뽀가 백미였다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재정이가 이발을 했다 후텁지근한 날씨에 땀이 많이 나서 시원하게 잘랐다 고무줄로 머리를 묶고 다니던 재민이도 미용실에서 재정이가 조용히 머리를 자르는 것을 보고..

얘들이 왜 이래?

아들이 사진을 보내왔을 때 내 눈을 의심했다 밥그릇을 들고 서 있는 처량한 모습 손자들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 일까 따듯한 밥 먹이고 따듯한 옷 입히고 따듯한 곳에 재우고 싶은 것이 자식을 둔 부모의 마음이다 부모의 헌신은 부모가 되어서야 겨우 조금 알게 된다 어린것들이 부모 마음을 알 턱이 없다 엄마가 따듯하게 밥을 지어 상에 올리면 손자들은 밥이 뜨겁다며 이런 자세와 이런 표정으로 선풍기 앞에 서서 밥을 식혀 먹는다고 한다 반찬도 마찬가지다 하나하나 들고 가서 식혀 먹는다 그렇다고 찬밥에 찬 반찬을 먹일 수 없는 것이 부모다 아이들은 먹어 보고 익숙한 음식에만 관심을 갖는다 전복이 먹고 싶은 것이 아니고 먹을 줄도 모른다 시장에 따라 갔다가 수족관에서 헤엄치는 커다란 생선을 보고 물고기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