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290

난 정말 몰랐었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우리가 얼마나 거짓에 막말을 했으면 입을 마스크로 틀어막고 살라 하십니까? 우리가 얼마나 서로 다투고 시기하고 미워했으면 거리를 두고 살라고 하십니까? 우리가 얼마나 손으로 나쁜 짓을 많이 했으면 어딜 가나 손 씻고 소독하라 하십니까? 우리가 얼마나 열 올리고 살았기에 가는 곳마다 체온을 체크하고 살아야 합니까? 우리가 얼마나 비밀스럽게 다녔으면 가는 곳마다 연락처를 적으라 하십니까? 난 정말 모르겠습니다 노여움 거두시고 자비와 사랑이 넘치는 행복한 세상으로 인도하여 주십시오 - 인터넷에서 떠도는 글을 주워 담았습니다

생원일기 2021.04.03

헛 살았다

古稀가 불원인데 이제야 헛살았음을 깨달았으니 나는 바보다 人生七十古來稀 사람은 70살 나이 먹도록 살기가 힘들다는 말인데 그 나이에 임박해서 보니 그 말부터가 헛 것이다 나이가 비슷한 내 친구들 거의 모두는 아직 팔팔하고 멀쩡하다 경로당에도 못 간다 웬만한 시골에서는 청년단원이다 나이 70을 이르는 말 중에 고희보다는 공자가 말했다는 從心에 마음이 간다 나이 70을 넘기면 마음먹은 대로 처신해도 법도에 그르지 않더라는 말이니 내가 그렇다 돈도, 명예도, 건강도 이제는 하늘의 섭리에 따르리라고 결심을 하고 나니 누구에게라도 진심을 말하는데 거리낄 것이 없다 좋으면 하고 싫으면 안 한다 살 만큼 살았다는 고희에,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나이인데 어쩌다가 한낱 미생물인 바이러스에 진 세상을 산다 세상을 지..

생원일기 2020.10.11

물 흐르듯

입춘이다 경자년 새해라고 들떴던게 엊그제인데 설을 쇤다고 어정거리다 보니 달력도 한 장이 넘어갔다 벌써 절기상 봄이다 가는 세월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 삶의 이치다 평범한 일상에서도 예기치 않은 곡절을 겪으며 살아가지만 세월만큼은 언제나 정직하고 변함이 없었다 봄이면 꽃이 피고, 여름에는 열매가 열리고, 가을에는 열매를 거두고, 그 열매를 먹으며 삭풍이 부는 겨울을 난다 가는 세월 순서는 여전히 변함이 없는데 올해 겨울은 수상하다 길지도 않지만, 짧다고도 볼 수 없는 생을 살았지만, 올해 같은 겨울은 처음이다 손발이 시리도록 춥지도 않았고 눈 한번 내리지도 않았다 동지섣달에도, 제일 춥다는 대한에도 눈 대신 장맛비 같은 비가 내렸다 올해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몇 해째 덜 춥고 눈도 적게 내리기는 했다 눈이 ..

생원일기 2020.02.06

은퇴라는 대안학교

영국에는 서머힐 스쿨이라는 실험적 대안학교가 있다. 통상적 학교는 공부를 가르치는 곳이지만 서머힐 스쿨은 학생의 자유를 존중해서 억지로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부모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삶의 가치를 깨우치도록 자유를 소중한 가치로 삼는다. 서머힐 스쿨은 유치원에 갈 나이에 입학해서 고등학교를 마칠 나이에 졸업을 한다. 다양한 연령층이 기숙학교에서 생활을 하지만 학년 개념이 없고 자신에게 맞는 수준의 수업을 하는 선생님을 찾아가 하고 싶은 과목을 배우는 교육방법이다 처음 입학한 어린아이들은 수업에는 관심이 없고 친구들과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며 신나게 논다고 한다. 친구들과 어울려 자유롭게 노는 것을 배우는 것이 서머힐 스쿨 교육 시작이다. 몇 년을 놀다 보면 형들처럼 책을 읽고 싶고, 피아노를 치고..

생원일기 2020.01.20

장학금

배움을 장려하는 목적으로 지급되는 돈을 장학금이라고 한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에게 지급되는 것이 관행이다. 아들이 장학생이라는 말은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 대표적 자식 자랑이다. 받은 돈이 아니라 공부를 잘해서 자랑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워도 학업을 계속하라고 지급되는 장학금도 있다. 사회안전망이다. 공부를 못해도 학교에 나오는 것이 기특해서 주는 장학금도 있다. 그런 뉴스가 있어 알았다. 나는 공부에 흥미가 없어서 성적이 항상 하위권이었다. 수업료를 못 낼 정도로 가정 형편이 어렵지도 않았다. 장학금을 한 번도 못 받은 이유다. 아들도 아비를 닮아서 공부에는 소질이 없었다. 내가 그랬으니 아들에게도 공부하라는 소리를 못 하고 내버려 두었다. 굼벵이 구르는 재주는 있어서 어렵게 대학은 갔다. 공부는 못해도 ..

생원일기 2019.09.08

死必卽生

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 마누라가 그 꼴이다. 뉴스에서 너도, 나도 나서서 내가 충무공이라고 설쳐대니 마누라도 내가 충무공이란다 충무공 사당인 현충사가 있는 염치읍에 집안 종산이 있다. 명절이나 제사 때에는 현충사 앞을 걸어서 성묘를 다녔다. 중, 고등학생 때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충무공을 정신적 지주로 숭배해서 현충사가 성역이었다. 봄 소풍은 충무공 탄신일에 맞추어 의무적으로 현충사행이었다. 교장 훈화와 역사 시간에도 충무공 교훈은 단골 메뉴였다. 난중일기를 읽고 독후감을 써내는 숙제도 있었다 군대에 갔다. 신병티를 못 벗은 졸병 시절 중대장 교육 시간이었다. 중대장이 칠판에 死必卽生 生必卽死라고 휘갈겨 쓰고 무슨 말인지 아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다. 모든 병사가 멍하니 앉아 있을 때 현충사가 고향..

생원일기 2019.08.11

상수리나무의 상흔

공원에서 베트남인 가족이 상수리나무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베트남에서 연구단지에 유학 온 과학자 가족이다. 여름에 잎이 무성하다가 겨울이 오면 낙엽이 지는 나무는 아열대 지방 사람들에게는 신기한 존재다. 과학자 아버지가 초등학생 자녀를 데리고 휴일에 산책을 나온 모양새다. 공원에는 아름드리 상수리나무가 여럿 있는데 한결같이 가슴 높이쯤에 수술 자국 같은 깊은 상흔이 있다. 과학자 아버지와 아이는 상수리나무 상처를 만져보기도 하고 상처 구멍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며관찰 중이다 베트남 가족 옆을 지나가는데 초등학생 아들이 나를 불러 세웠다. 한국 일반 초등학교에 다니는 외국 아이들은 한국말을 잘해서 우리나라 아이들과 다를 바 없다. 초등학생은 상수리나무에 있는 상처 구멍이 왜 생긴 것이냐고 물었다. 다른 ..

생원일기 2019.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