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290

그놈이 그놈1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자리는 소파다. 직장에 다니며 사회활동을 할 때는 잠시 머무는 자리였지만, 은퇴 후에는 하루의 절반 이상을 이 자리에 앉아서 세상과 교감한다. 여명(黎明)의 시간에 일어나 어슴푸레 잠에서 깨어나는 창밖의 숲을 바라보는 것이 나의 일과 시작이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숲에서 계절의 변화를 읽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의 숲을 바라보며 흘러가는 세월 따라 나도 변한다 숲은 벽에 걸린 풍경화처럼 항상 그 모습 그대로 처럼 보이지만 매일 지켜보면 생동감이 넘치는 유기체다. 키를 재고 서 있는 나무들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그늘을 지워 사람들을 품 안으로 불러 모은다. 새들도 산다. 까치와 참새, 박새, 딱따구리 같은 텃새는 이름이라도 알지만, 잠시 머물다 떠나가는 철새는..

생원일기 2019.06.03

가짜 같은 진짜 뉴스

어린이집에서 아기들에게 장난감 상자를 풀어 놓으면 남자아이들은 물총이나 자동차를 집어 들고, 여자아이들은 소꿉놀이 주방기구나 아기인형을 잡는다고 한다. 누가 가르치지도, 시키지도 않았는데 성별로 비슷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이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TV 리모컨을 잡으면 남자 어른들은 뉴스나 운동경기를 보고, 여자 어른들은 드라마나 가요 프로를 본다. 수술 경과를 알아보기 위해서 며칠간 병원에 입원했었다. 간단한 수술이었지만 수술 상처가 잘 아물었는지 부작용은 없는지 검사를 받기 위함이다. 병원 생활은 따분하다. 다인실 병실은 환자들의 신음, 주사 맞고 약제 처리하는 소리, 의료기기들의 기계음으로 편히 쉴 공간이 아니다. 병실 밖이라 해도 불편한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병원 밖으로는 나갈 수 없으니 ..

생원일기 2019.05.20

자꾸 빤쓰

황당함이 신기함으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찜질방에 갔다. 추운 날, 단독주택에 사는 나의 추위 피난처는 찜질방이다. 불가마에서 흥건히 땀을 흘리고 황토방에 누워서 쉬고 있을 때다. 옆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던 할머니가 돈을 잃어버렸다고 구시렁거렸다. 잠을 자거나 누워있던 사람들이 일어나 떨떠름히 할머니를 바라봤다. 할머니는 함께 온 딸에게 목마르면 음료수를 사 먹으려고 자꾸 빤쓰에 넣어둔 돈이 없어졌다는 말만 반복했다. 목욕하고, 찜질복으로 갈아입고 황토방에서만 있었으니 여기서 빨리 찾아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누워있던 매트 밑을 들춰보고 옷도 털어 보며 혹시라도 흘린 돈이 있는지 찾아봤지만, 허사였다 찜질방에서는 현금과 핸드폰 분실 사고가 자주 일어나니 주의하라는 안내문이 곳곳에 붙어있..

생원일기 2019.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