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일기 290

조요경(照妖鏡)

블로그 개설일 2016년 12월 17일, 개설일로 부터 306일차, 생원일기 200회 학교에 행사가 있어서 주차장이 꽉 찼다. 초등학교는 교직원이나 방문객 대부분이 여자인 탓에 차가 많으면 운전이 서툴러 주차가 문제다. 조금 남은 빈자리를 찾아서 전면이든 후면이든 어렵게 주차를 하는데 보는 사람이 위태위태하다. 유독 주차에 어려움을 겪는 차가 있어서 도와주려고 갔더니 나이 많은 할머니다. 대신 주차를 해주려고 운전대를 잡았다. 후면으로 주차를 하려고 백미러를 보니 미러가 접혀있다. 할머니에게 백미러를 접고 어떻게 운전을 했느냐고 물으니 운전을 할 때 왜 백미러를 보느냐고 반문을 한다. 백미러를 차 안에서 화장을 할 때 쓰는 거울로 알고 있었다. 오랫동안 운전을 했지만 한 번도 백미러를 보지 않았고 지금까..

생원일기 2017.10.20

제눈에 안경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난다. 생체리듬이 새벽 4시면 일어나도록 조화를 부려서 새벽잠을 잃은지 오래되었다. 나도 원래는 해가 중천에 떠야 일어나던 잠꾸러기이었다.나이가 들면서 노화현상 중에서 제일 먼저 찾아온 것이 새벽잠을 못자는 생리현상이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도 특별히 하는 일은 없다. 신문대신 컴퓨터에서 뉴스나 관심사를 알아 보고 블로그에 일기도 쓴다.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 4시에 일어났다. 늦잠을 자는 아내 때문에 불도 켜지 못하고 발소리도 나지 않게 조심히 거실로 나왔다. 길갓집이고 도로쪽으로 커다란 창문이 있어서 거실은 가로등 불빛이 스며들어 보름달밤처럼 훤하다 매일하던 버릇대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안경을 꼈다. 그런데 이상하게 컴퓨터 글씨가 잘 안보인다. 경미하지만 당뇨증세가 있어서 갑자기 ..

생원일기 2017.10.17

孝不孝(효불효)

친척 형님 문병을 하러 갔다. 나이를 이기는 장사는 없다. 젊어서는 호탕하고 술도 잘 마시던 형님도 나이 팔순을 넘기자 큰 병을 얻고 병원에 누워서 지낸다. 6인실의 병실에는 비슷한 처지의 노인들이 입원해있었다. 팔에는 링거를 꼽고, 콧줄도 하고 힘겹게 생명을 부지하는 모습이 하나 같이 애처롭다.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면 진단 장비가 좋아서 무슨 병인지는 금방 알 수 있다. 병을 알아도 팔십이 넘은 나이에는 수술도 함부로 할 수가 없으니 그저 난감할 뿐이다. 통증의 괴로움이라도 덜어달라고 병원에 입원한 형님이다. 체념한 듯 무표정하고 힘이 없던 형님이 나를 보자 애써 웃으며 반긴다. 코로나 사태 이후 병원의 간병문화도 많이 바뀌었다. 입원환자 문병은 원칙적으로 금지다. 병원에 따라서 코로나 백신을 접종한..

생원일기 2017.10.16

만차랑 단호박

어제 보여드린 사진은 만차랑이라는 이름의 단호박이다 일본에서 육종한 품종으로 우리나라에도 수입되어 일부 재배를 하고 있다 종자 1알의 가격이 5만원을 호가한다 단맛이 나고 감칠맛이 있어서 호박죽용으로 인기는 있지만 종자가 너무 비싸서 재배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정품 종자로 키운 만차랑이다 내가 수확한 만차랑은 집에서 받은 씨로 키운 것인데 잡종이 되어서 모양마저 괴물이 되었다 종묘상에서 파는 종자는 대부분 교잡종 F1이다 F1은 어미 암수의 우성만을 타고나와 좋은 열매를 맺지만 F2, F3, F4로 갈수록 우성인자는 퇴화하고 열성인자만 드러나 못난이 잡종이 된다 그래서 농가에서는 자가채종을 하지 못하고 해마다 비싼 종자를 종묘상에서 사서 농사를 짓는다 대통령의 자식이니 대통령의 업적을 계승할 것이라..

생원일기 2017.10.11

주판

어린 손자가 우리집에 오면 서랍부터 뒤진다. 특별히 찾는 것이 없어도 모든 서랍을 뒤집고 엎어 놓는다. 뒤집고 엎어진 서랍을 뒷정리하는 것은 나의 몫이다. 오늘은 책상서랍을 뒤져서 주판을 꺼내들었다. 주판을 들고 흔들어대니 아이에게는 훌륭한 리듬악기다 나는 70년대 중반에 공무원에 임용되었다. 초임지 사무실은 파도소리 같은 주판알 굴리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공무원의 일 대부분이 숫자를 다루는 일이어서 선배들이 나에게도 주판 부터 배우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주산능력이 쳐지면 아무일도 할 수 없다고 겁을 주기도 했다. 처음에는 어설퍼서 힘이 들었지만 몇달을 연습하니 내몫의 일은 어럽지 않게 주산을 할 수가 있었다 새로 산 주판은 손에 맞게 길을 들여서 썼다. 손잡는 부분은 사포로 갈아서 매끈하게 하고 주..

생원일기 2017.10.09